옛날에도 모임은 어려워
[ 옛날에도 모임은 어려워 ]
옛날 옛적에 어느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매년 초에 축제를 열고 한해의 풍성함과 안녕을 빌고 저녁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병신년!!! 60년 전인 그해에도 어김없이 축제가 열렸고 저녁에 마을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헤어질 것이 아니라 모임을 만들어 마을을 위해 뜻 있는 일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들 그것에 대해 찬성을 하고 모임을 추진하기 위한 임시 직책을 정하고 임시회의를 통한 준비를 거쳐 다음 축제 때 정식으로 모임을 출범시키자고 했습니다.
모임의 회원들은 다양한 연령대이었지만 열정적인 사람들이었으므로 모임은 활기를 띠고 힘찬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첫 사업으로 회원 모두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마을회관 앞의 게시판을 크게 정비한 것입니다. 게시판 앞에는 필기구와 키 작은 사람이 높은 곳에도 글을 쓸 수 있도록 사다리도 준비했습니다.
게시판에 첫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것은 모임의 이름과 슬로건을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머리를 굴렸습니다. 쉬울 것 같은 이름 정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찌 어찌해서 겨우 이름이 정해졌지만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고, 게시판은 온갖 대자보로 가득 차서 임시총무는 서둘러 게시판을 정비하고 임시회의에서 게시 글을 사전 검토하는 안을 서둘러 통과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름이 ‘새로운 마을’로 정해지고 슬로건도 “새벽종이 울렸네!”로 정해졌습니다. 이제 마을 회관에 종탑이 설치되고 매일 새벽 새벽종이 울리게 됐습니다. 물론 늦잠을 자던 사람들의 불평은 있었지만 모임의 결정이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꼬우면 마을을 떠나던지!’라고 종지기는 종이 표시된 로고 완장을 차고 공공연히 떠들었지요.
모임의 이름과 슬로건이 정해지자 좀 조용하던 마을이 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누군가 게시판에 ‘대표를 뽑자!’라고 글을 올린 겁니다. 다시 게시판에 대자보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의 논쟁은 더욱 치열하여 대표의 권한문제부터 호칭까지 다양한 의견이 맞서 결론이 나지 않는 겁니다. 주요 쟁점은 대표의 권한과 관련해 ‘짐이 태양이다!’라고 외친 <루이 14세>를 모델로 한 프랑스식 절대왕권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왕은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란 영국식 의회주의를 택할 건지가 최대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대표로 가장 유력시 되던 모임의 회원은 ‘프랑스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회원들 모두가 게시판 이용을 자제하기 시작하고 마을은 결정을 유보한 채 다른 문제를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업무추진계획을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생업에 충실하던 모임의 회원 모두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종소리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생업을 마치면 자기가 맡은 분야는 물론 다른 문제에 대한 의견제시까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회의 정관이 만들어지고, 부서의 업무가 정해졌으며 대외적인 문제까지 여러 직책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게시한 게시판의 내용을 분석한 기록 담당 직책의 발표에 의하면, 논문이 119편, 보고서가 365편, 강의안이 88편, 반박이 실린 대자보가 112편 등이었다고 합니다.
직책에는 예산, 법무, 경제, 교육, 홍보, 예술, 안전 등 10여개의 직책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골머리를 썩는 직책은 안전을 맡은 안길부란 사람이었습니다. 김종북과 이종중이란 회원이 그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나서자, 그는 박종남과 조종미란 회원을 회유했습니다. 그는 마을의 안전을 위해 대공 요격 미사일 체제인 뽕드를 사고자했지만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이번에는 이웃의 다섯 마을과 평화회담을 하고자 했으나 여섯 마을이 아니면 회담을 안 하겠다고 마을 대표들이 통보해 오자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제 마을은 예전의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마을은 위험에 노출되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고, 각 직책을 맡은 회원도 다음 축제가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모두들 시름에 잠겨 있을 때 게시판에 예술을 맡은 회원의 이름으로 대자보가 실렸습니다. 그것은 노래가 실린 악보였는데 콩나물 대가리를 뺀 가사만 소개하고 이제 나의 얘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 마을에
우리 마을에
모임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
그것은 사랑
그것은 행복
우리 마음에
우리 마음에
모임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
그것은 진실
그것은 정의
우리 마을에
모임이 있다면
그것은 즐거움
아!
우리 마음에
모임이 있다면……
* 참으로 모임은 힘든 것 같다. 그간 모임에서 나온 안건과 댓글만 모아도 책 한 권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그간 우리 모임에서 찍은 영상을 상영회를 통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는 것은 큰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의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모두가 초상권을 들먹이며 모두의 동의 없는 작품공모에 반대했고
이후로 첫 모임도 갖기 전에 시끄럽다.
그래서 나의 소회를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