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노인
<오피스텔 노인>
오X근 할아버지! 그분이 이 오피스텔에 온 것이 작년 5월이었으니까 이제 일 년이 넘었다. 올해 83세로 건강한 신체에 언제나 따듯한 미소를 띄우고 인사를 건네시는 그분을 점차 더 알게 된 것은 컴맹이신 그분이 경리에게 또는 직원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하러 사무실에 자주 오면서 부터다. 오피스텔은 개인주의 특성상 보통은 사무실 직원과는 가깝게 지내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분과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분은 젊은 사람들 위주인 우리 오피스텔의 최고령 입주자다. 그분은 팩스를 보내는 일, 관리비 현금납부를 은행에 부탁하는 일, 시스템 에어콘 사용법을 물어보는 일 등, 노인 홀로 사는 불편을 하소연하기 일쑤고 우리는 기꺼이 그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 달 전쯤 그분이 오셔서 차 한 잔을 드렸는데 그분이 그때 의자에 앉아서 당신의 사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그분은 서울에서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내가 아파서 살기가 편리한 아파트로 옮기고 아내의 병이 심해지자 삼성의 반도체에 근무하는 아들이 사는 이곳 동탄의 한림대 병원으로 아내를 입원시켰단다. 그리고 아내의 병이 심해지자 아파트를 팔고 병원이 가깝고 아들의 집도 가까운 우리 오피스텔을 얻고 아내의 간병을 전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병원에 가서 간병을 하고 오피스텔에는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다시 밤에 잠을 자러 오는 일을 일 년째 반복하다 보니 그분도 웃음이 점점 줄어들고 수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분의 아내는 암인데 이제는 살 가망 전혀 없어서 곧 작별을 할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 미소 뒤에 보이는 쓸쓸함이 짠하게 전해왔다. ‘내 아내가 젊어서 무척 고왔어. 지금 후회되는 일은 젊을 때, 보다 더 사랑해 주지 못한 거야. 아내 속을 많이 썪였거든……. 이제 곧 연명치료를 중단하려고 그래. 이제 작별을 해야 해.’
아마 그분은 아내의 병 치료에 쓰려고 아파트를 팔고 오피스텔에 월세로 있으면서 남은 돈을 다 짜내고 있는 것 같다. 며누리 모르게 아들이 반찬도 가져오고 고기도 사서 보낸단다. 그러면서 대기업 삼성에 다니는 아들을 자랑했다.
이번 달에도 관리비 입금을 부탁하러 그분이 오셨다. 봉투에 십 원짜리 동전까지 딱 맞게 넣어서 부탁을 하는 데 얼굴이 많이 야위셨다.
“사모님은 어떠세요?”
“큰일 났어, 아들이 아파, 아들이 폐암 말기래. 직장도 그만 두고 지금 재검하러 아주대 병원으로 갔는데, 큰일이야. 빨리 가봐야 돼. 아들이…, 아들이…, 관리비 좀 부탁해요. 지금 가봐야 돼.” 허둥지둥 나가시는 그분을 보면서 저 늙은 나이에 저렇게 살아가는 노인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아려온다.
은행에 관리비 입금해주러 가는 경리도 마찬가지로 눈시울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