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의란 무엇일까?<8-6>
전국이 꽁꽁 얼었다. 지구가 빙하기에 접어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늘은 그저 아무 일없이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나름대로의 소박한 소망을 가져 보았다.
지하에 도착하니 S반장은 방금 잠에서 깨었는지 눈은 게슴츠레 하고 머리칼은
제 맘대로 뻗쳐 있다.
“참 신기해요. 뉴스를 보니까 다른 데는 수도관이 동파돼서 난리인데, 우리는 동파사고
하나 없고...”라며 S반장은 퇴근하기 전에 말했다.
“아이, 아직 겨울 끝나려면 멀었는데 입방정 떨지 말어.” 그의 등에 대고 말하는데,
뜬금없이 그의 얼굴이 ‘조조’를 닮았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껄쩍지근 했다.
그가 퇴근하고 30분도 안돼서 6동 1503호에서 물이 안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꼭대기라 계량기가 동파됐나?’라며 일어서려는데 전화와 인터폰이 동시에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 전화통이 울어댔다. 이어 과장이 Y주임과 나타나고 조금 후에 소장이
나타났다. 급수탱크의 수면계는 ’0%‘를 가리키고 있었고 모터는 정지되어 있었다.
앞이 캄캄해졌다.
“씨팔, 근무자는 주말에 뭐 한 거야?” Y주임이 소리치며 과장과 같이 ‘토치’를 갖고
급수탱크실로 달려갔다.
“아니, 근무하면서 알람소리 못 들었어? 수면계 좀 체크하지...” 소장이 이어서 한마디 했다.
경리는 텅 빈 사무실에서 울리는 전화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애졌다가
노래졌다가 했다. ‘어제는 내 근무가 아니었는데,,, 이 불똥을 피할 수 있을까?’라고 하릴없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뭐해요? 빨리 가서 가스나 갖고 와요.” Y주임이 토치불로 급수실의 취수관을 연신
지져대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까 찾아보니까 없던데...”
“아니, 없긴 왜 없어요? 관리실 찬장 밑에 있다 구요.”
“알았어요.”라고 대답하며 급수실 계단을 올랐다.
“씨팔 놈이 귓구멍이 막혔나?” 급수실을 다 나서기도 전에 Y주임이 들으라는듯이
소리쳤다.
그는 기술이 좋다. 유명 건설회사의 아파트에서 하자담당을 보다 나이가 들어 이곳에
왔으므로 일처리에는 누구나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대놓고 으르렁거리지는
않았으나 오늘은 먹이를 본 이리처럼 이빨을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뒤통수가 가려웠다.
‘뒤에서 얼마나 씹어댈까?’
부탄까스를 들고 오니 7동 대표가 급수실에서 화난 얼굴로 나를 보자 말자,
“아니, 저 정도 물이 빠지려면 며칠이 걸릴 텐데, 다들 뭐 했어?” 나는 입이 자꾸
들썩거렸으나 참았다. 그는 동 대표 회장의 오른 팔이며 행동대장인데다 급수탱크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기술적으로도 아는 체를 많이 하였다.
이곳에서의 내 입은 주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안한 것은
일단 잘한 것 같다. ‘어제 근무자는 내가 아닌데....’라는 말이 입가에 자꾸 맴돌았다.
나중에는 어찌 될망정 퇴근한 S반장이 차라리 부러워 졌다.
단수로 인해 ‘에어’가 차고, 압력이 저하되어 나는 모두가 퇴근한 밤늦게 까지 난방이
안 된다는 민원에 시달렸으며, 지하실의 드레인 작업과 옥상의 팽창탱크실 압력점검 등으로
여러 번 옥상을 오르내렸다.
마지막 작업이 끝났을 때, 텅 빈 옥상위에는 찬바람이 함부로 뛰어 다니고, 둥그런 달이
달무리를 허리에 감고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성긴 별들은 내 모습처럼 꽁꽁 얼어서 허공에
쳐밖혀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눈들이 서걱 서걱 소리를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멀리
영통지구의 네온 불빛이 꽃처럼 피어나고 그 너머로 기흥 반도체공장이 공룡처럼 버티고
있었다.
오늘은 좀 편했으면 하는 아침의 소박한 소망마저 시새움 당하고 무참히 짓밟혔다.
나는 지퍼를 내리고 물건을 기관총처럼 좌우로 휘저으며 오줌을 갈겼다. 오줌발이 바람에
실려 허공을 가르고 어둠의 심연 속으로 가라 앉아 자살도 하고, 어느 놈은 힘차게 솟구쳐서
우주로 날아가기도 한다.
신이 난다. 나는 달빛아래서 ‘조르바’가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선 그리스해변의
언덕 아래로 시커먼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람아, 달아, 별아, 나를 정말 기다렸느냐? 이왕 늦은 거 내가 노래를 불러 주마.
축제를 열자꾸나.” 나는 노래를 불렀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 꿈을 꾸었네, ,
,,,,,,,
그대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아라.’
노래 가락은 차거운 하늘에 은구슬이 되어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는 ‘은하철도’를
따라 우주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 시린 마음도 그 열차에 실어 본다.
‘,,,,,,,,,,,,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나는 오리처럼 두 손을 주둥이에다 대고 리듬에 맟춰 빙빙 돌았다. 관중의 응원에
필이 꽂힌 가수처럼 우쭐대면서... 두 번째 열차가 떠난다. 코가 찬 공기에 찔찔 거린다.
‘잘 있거라. 나의 친구들아......’
“철부지처럼 너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코나 찔찔거리고” 젊은 날의 두보가
힘차게 소리치며 나타났다.
“아! 당신은,,,,,, 두보(杜甫)?”
“그렇지 나를 알아 보는군, 내가 한 수 읊어주랴? 잘 들어보고 힘내.“ 그는 우렁찬
소리로 노래했다.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반드시 정상에 올라 뭇산의 작음을 보리라.)’
세 번 째 열차가 달빛에 영롱한 빛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두보가 열차에 매달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떠나갔다.
“두보여! 고마워요. 그런데 힘이 부쳐요. 힘 낼께요.”
달빛에 흠뻑 취한 눈이 미싱의 회전음에 맞추듯이 서걱서걱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바람은 가던 길을 바꿔 맴을 돌았다. 달은 어느새 지붕 가까이 내려와서 배시시 웃었으며,
별들은 예쁜 눈을 깜박이었다.
나는 종일 시달려서 밤에는 녹초가 됐으므로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서 잠깐
동 대표회장이 웃고 서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기계실로
달려갔다. 수면계의 눈금, 압력계의 압력, 판넬의 초록과 빨간 표시등도 모든 것이
정상이다.
못다 쓴 <발송문>을 서둘러 마무리 했다.
<발송문 5호>
2. 현황(계속)
오늘날의 토지주택공사도 출발 시에 비해 덩달아 비대해졌다. ‘공공재의 비극’이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급여와 복지를 늘리고, 직원과 산하조직을 늘리거나
신설하고 새로운 투자회사를 설립했으며, 성과급 및 퇴직수당 등을 늘렸다. 관료제의
병폐가 그곳에도 스며든 것이다. 이제 공룡이 되어 자체 소비가 엄청나게 되었다.
118조가 넘는 부채를 안고서 하루 100억의 이자를 지불하면서도 1,062억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부나 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은 토지나
주택 등 과 관련하여 소요 비용외에 한 푼의 이익도 남겨서는 안 된다.
미국의 월가는 금융위기와는 상관없이 대규모의 보너스잔치를 벌리고, 결국은 가난한
국민의 혈세를 대규모로 투입했다. 대통령이 나서도 커다란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가? 서민들은 공적자금이 들어간 금융기관의 높은 문턱을 복도하지는 않는가?
감독기관의 퇴임자가 피감독기관의 간부로 혹은 최고경영자로 취업하고, 정의의 저울추를
다루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행하여져라’고 배운 법관이 전관예우를 악착같이
존치하는 세상, 검사가 기소독점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기업의 뇌물에는 빠르고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1%의 승률도 없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은 차라리 ‘불공정거래위원회’가 오히려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대다수가 재임 중 각종 이권과 관련하여 부정을 저질렀고 공무원 인사와
관련하여 엄청난 돈을 챙겼다. 심지어는 도피생활까지 하는 웃기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언론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싶다. 오! 나팔수들이여.... 시사 TV토론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다. 출연자 대부분이 정치인과 대학교수이고, 시민논객이나 방청객도 찬성과 반대를
배려해서 뽑는다. 시간과 공간상의 제약으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우리는 대학교수에
너무 의존한다. 방송이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말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 지
모른다. ‘폴리패서’란 말이 생길 정도로 언론을 출세의 도구나 정부의 연구비 지원의
발판으로 삼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구하기가 힘들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정부에
낙인찍히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의 말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며
곡학아세(曲學阿世)가 판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저널’해야지 ‘아카데믹’해서는 안 된다.
그 때 그 시점의 현상을 중심으로 원인과 대안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예를 들면, 노동문제가 이슈가 됐을 때 청치인, 교수, 노총인사 등이 출연한다. 그런데
노총의 간부는 이미 관료화 되었고, 노총을 대변하지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조직이
아닌 노동현장의 사람 중에서도 참여의 기회를 주어야 생생한 현실을 알 수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원자(Volunteer) 중에서 선발하는 방안도 그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장수 TV 프로그램 중에 ‘전국 노래자랑’이란 프로가 있다. 수십 년을 이어온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지원자 중에서 예선을 거쳐 뽑는데 그 인기가 대단하고 사회자의
인기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에 버금간다. 그 인기비결은 모두가 출연할 기회를 개방했다는데
1차인 비결이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시사토론이 되면 시청률도 덩달아 상승할 것이다.
대부분의 공기업들은 방만한 경영을 하고 이제는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등을 비롯해
많은 공기업들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하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연금관리공단은
20년이면 그 바닥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들의 자식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우선은 수익을 내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들의 투자결정이 항상 정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관리공단은
이미 부채가 1조원을 초과했다. 정부는 이제 슬하에 공룡 식구들을 잔뜩 거느리게 된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밤을 세워 토설해도 끝나지 않으리라. 그것도 그러한 정보는 대부분 그들이
감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 보자. ‘수도권매립단지 관리공사’가 있는데 이 공사(公社)가
환경부 115억, 서울, 경기, 인천의 3개 지자체가 283억으로 총 398억원을 들여 ‘하수슬러지
처리시설’을 지었다. 그런데 지은 지 8개월 만에 가동이 중단됐다. 공사(公社)는 공사대금을
미리 주고, 감리회사는 ‘정상준공’이라고 속이고, 시행사는 부실공사를 했다. 공사는
궁여지책으로 하루 1,000톤의 설계기준을 터무니없이 낮은 50톤으로 낮추어 주었는데,
그것 마져도 가동할 수가 없어서 이제 45억을 보강공사를 하는데 들이고, 년간 40억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거란 얘기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공사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굳이 예를 드는 것은, 우리가 공해상에 버려왔던 분뇨 등
하수슬러지의 해양투기가 내년부터 국제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질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여해서 공공재를 윤간(輪姦)해
버렸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말이다.
우리는 ‘정글의 게임’에서 성공한 그들이 정글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적을 쏘았는지 아군을 쏘았는지 그들만이 알 뿐이다. 모든 정보는 차단되어 있고
발표되는 건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그 정보도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이 국민의
소유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복잡해 보이는 메카니즘도 단순 명쾌한 논리로 풀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1차적으로는 ‘돈’이 있다. 소위 ‘비자금’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
정보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수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작금의
중견기업들도 툭하면 그 규모가 천억이 넘는다. 이런 비자금의 소비에는 정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즉 비자금의 생산자는 불특정 다수의 근로자이고 소비자는 특정 소수의
권력기관이나 이권조직이다. 기업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며 분배자이다.
무엇이 재개발이다, 재건축이다 하며 1월의 한겨울에 물대포를 쏘고 300여명의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게 만드는가? 공사기간을 단축하려고 혈안이 돼서 열악한 건설현장에서
야간작업과 휴일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의 과실은 어디로 가는가? ‘형님예산’이니
'과메기 예산‘이니 하며 돈되는 사업에는 예산을 물쓰듯 하면서도 ’서민예산‘이니
’복지예산‘에는 왜 그렇게 인색한가? 마치 신흥 선진국의 모범인양 하면서도 복지예산은
OECD국가 평균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비자금이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비자금의
뒷받침 없는 서민 예산은 매력이 없을 것이다.
비자금에 맛들인 그들은 아이들이 피자나 인스턴트에 길들여지듯이 고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그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국민과 대의를 앞세운 아름다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언제나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그들에게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말은 딱 어울리는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