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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청년 일자리 정책에 대하여

쥬띠 2016. 9. 21. 14:19

유토피아는 '토피아가 없다'란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나라는 없다란 얘기죠. 그럼에도 우리는 다가갈 수 없는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그리워하고 추구합니다.

정치가는 국민들에게 항상 이상향을 제시하고 표를 얻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내년도 정부예산이 드디어 400조원을 초과한다고 합니다. 정부는 국방예산외에도 청년 일자리 예산과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도 많은 돈을 쏟을 거라고 말합니다.

고령화는 이미 시작됐고 저출산만 따로 놓고 보면, 우리의 저출산 추세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인구절벽을 맞이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국민의 행복한 삶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을 들어보면서 의심이 듭니다. 정부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이 깨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는 정책당국자와 기득권자들입니다. 그 정책을 추진하는 당국자들은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누구의 입장에 서서?’란 질문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인구절벽이 나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재의 청년들은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비정규직에 알바로 생을 유지할 뿐 아니라 꿈도 희망도 포기한 5포 세대들입니다. 여기서 더 깨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수단조차 없는 불쌍한 젊은이에게는 협박입니다.

지금의 형편은 젊은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정도입니다.

청년대책을 세우는 데에도 청년들의 참여와 입장은 없습니다. 정책자가 고민하는 것은 질 좋고 싼 노동력의 감소, 부동산 값의 하락 등 자신들의 입장에서 본 문제들입니다.

 

인구절벽이 오면 부동산값이 하락해서 부동산이 더 이상 재테크의 수단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정상적인 논리대로 라면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현실에서 원룸과 쪽방촌 같은 열악한 주택의 거주민이 줄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 되는 이유는 고가의 부동산 정책을 선호하는 욕심 많은 기성세대들이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입니다.

 

고가의 부동산 정책을 선호하는 욕심 많은 기성세대들이 죽고 인구절벽이 오면,

청년들은 주거문제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이며(주택은 남아돌게되고 주택은 더 이상 소유하는 재산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하는 생필품이 될 것이다. 마치 자동차처럼 리스가 일반화 할 것이다.)

청년들은 비정규직과 알바에서 벗어나 완전고용의 시대를 맞을 것입니다.(일본이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더 이상 미움의 덧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자살, 폭력, 자포자기의 덧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싸구려 임금이 아니므로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가 있고, 아이도 많이 나아 키울 수가 있다)

 

노령인구는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나눠지기 위해서 고민해야지 청년들에게 모두 그 부담을 떠넘겨서는 곤란합니다.(정부는 인구절벽이 오면 젊은이들의 노인 부양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선진국들은 다 국가와 사회가 이를 부담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자들은 인구가 많다고 한가구 한 자녀 정책을 편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노령화사회가 들어서서야 연금이 부족하다느니 하며 노령화 대책을 세운다고 난리고, 앞으로 다자녀 지원정책도 얼마 안 가 금방 바뀔 지도 모릅니다.

이 모두가 철학도 없고 정책의 대상자에 대한 고민 없이 자기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입니다.

 

원전얘기는 많이 했으므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전을 지으면서 그 지역이 활성단층이라서 원전을 지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원전을 지었습니다. 원전정책이 싼 전기를 공급해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걸고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만 옳을 뿐입니다.

 

좋은 정책이란 정책의 대상자이며 수혜자가 될 사람들의 입장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돈이 아닌 사랑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환경문제 등 언제나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집값이 올라가서 좋아하는 사람보다 고통 받는 사람이 더 많이 있지만 당국자들은 애써 이를 외면합니다.

 

이왕 정부가 예산을 들여 청년 일자리 정책과 저출산, 고령화 대책까지 추진한다고 하니

긴 안목과 철학을 가지고 추진하되 청년의 입장에서 사랑을 가지고 추진하길 바라봅니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를 먼저 들먹이는 사람들은 좋은 정책자가 아닙니다. 그런 정책은 언제나 최하의 정책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건강한 젊은이가 노동일을 성실히 했을 때, 생애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교육시키고 집도 장만할 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구절벽이 오면 저임금 정책이 사라질 겁니다.

지금의 고위직들은 엄청난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여러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고가의 부동산 정책과 젊은이의 저임금 정책을 고수할 겁니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니까요. 그들은 루저의 입장에 결코 서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말- 언제나 경제논리를 앞세움-은 언제나 그럴듯 하지요.

그들은 경제논리자들이 얼마나 많은 공기업을 망가뜨렸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직간접으로 연결된 당사자들이니까요. 낙하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기업마다 이들에게 줄 비자금 마련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배 고픈 시대를 살면서 경쟁과 탐욕만 키운 욕심 많은 세대는 아직도 경제타령만 하며 반성할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지고 인구절벽이 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요.

 

인구절벽을 꼭 환영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한 입장에 있는 젊은이의 문제를 욕심 많고 가진 것도 많은 늙은이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들은 경제적이며 비도덕적입니다. 비도덕이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그들은 모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은 정책 추진자가 가슴에 꼭 새겨야 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