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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청년 일자리정책에 대하여-2

쥬띠 2016. 9. 23. 12:46

[ 유토피아- 청년 일자리정책에 대하여-2 ]

 

톨스토이의 우화소설 중에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란 소설이 있습니다.

A라는 사람에게 해 뜨는 순간부터 해질 때까지 네가 밟는 땅을 모두 주겠다.’라고 하자 A는 이른 새벽부터 뛰다시피 하여 동서남북을 다녀 많은 땅을 확보하지만 욕심 때문에 늦어져서 그만 목적지 바로 앞에서 해가지자 A는 피를 토하고 죽습니다.

그가 죽는 바람에 그는 결국 그가 쓰러진 자리인 1평 정도의 땅만을 얻는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사람에게는 한 두 평이면 족하다는 얘기이지요.

 

어쩌면 이건희씨나 신격호씨는 A보다는 여러 평을 더 쓰겠지만 그들의 남은 돈이나 부동산은 그들에게는 의미도 없는 허구일지도 모릅니다.(경제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쌓아놓고 처치도 못하고 숫자상으로만 누리는 재산-부동산, 주식, 채권 등-에 대해 부의 보유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부동산의 효과적 활용과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변호사 수임료를 100억이나 받는 사람도 있고, 호화요트에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 공직에 있으면서 그것은 관례였다거나 대가성 없는 돈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입 규모만 봐도 그들의 1년 소득이 청년 1000명 이상의 1년 소득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정부의 예산이 400조를 넘었다고 하고 청년 일자리 예산과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도 많은 예산을 배정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청년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나 싶기도 하지만 문득 내년도에 선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진정성이 퇴색하는 느낌입니다.

왜냐면 지금의 정책 추진자와 정치가는 경제가 제일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세대(Money Oriented Generation)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들의 주머니 입장에서는 옳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불여 도덕(經濟不如 道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는 도덕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은 우리 사회의 혼돈 문제는 도덕과 정의의 문제인데도 계속 경제라고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경제는 많은 가치 중에서도 하부 가치입니다.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에게 경제는 최우선의 문제이고 청년, 임산부, 노인 등의 문제는 경제문제 다음의 차선책입니다. 그런데 제일의 문제인 경제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경제문제가 다시 제일의 자리에 들어섭니다. 결국 청년, 임산부, 노인의 문제는 영원히 차선책에 머문다는데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에게는 경제문제 외에는 모든 문제가 언제나 차선책(Everybody’s Second Choice)이기 때문에 선거 때 아니면 그들의 관심을 끌 방법이 영원히 없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느냐?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이익단체 등의 로비 때문입니다. 비자금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 되어갑니다. 오로지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경제를 위하여!’란 말입니다. 이제는 여당은 물론 야당도 부자천지입니다.

청년, 임산부, 노인은 로비자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 외에는 영원히 차선책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법안들이 로비자금이 없어서 회기 내에 처리되지도 못하고 폐기됩니다.

 

이외에도 숱한 문제가 있지요. 전관예우, 낙하산, 정실인사, 부의 세습……. 요즈음 유행하는 영화만 봐도 문제를 알 수가 있지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베테랑, 부당거래, 내부자, 아수라…….

 

그럼에도 경제가 제일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후안무치 그 자체입니다. 아마 내년에도 목이 터져라 경제를 외칠 겁니다. 그러므로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의 안중에는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습니다.

 

가처분소득이란 게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소득 중 소비나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가처분 소득이 100만원이 늘었을 때 청년, 임산부, 노인들은 그 돈의 대부분을 소비에 사용하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에게100만원은 간에 기별도 안가는 껌값이라서 거의 소비에 쓰이지 않습니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는 그만큼 우리 경제에 중요합니다.

물론 정책추진자와 정치가들의 자녀들은 청년 일자리정책이 아니어도 전화 한 통이면 인턴도, 심지어 교수도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가 청년일자리 정책에 무관심한 게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겨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들이 일자리 100만개를 늘리겠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주장은 안 되도 그만인 주장이고요.

지금의 비정규직의 실태를 보면 비인간적이고 최저임금의 알바 수준의 일자리가 난무하고 평균 재직년수가 1년도 안된다고 합니다.

허접한 일자리 100만개는 청년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들에게 정규직이며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일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러려고 고민을 하고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제 인구절벽이란 게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인구절벽은 청년세대들을 위한 새판을 짜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20년이면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죽음이 현실화 될 겁니다.

그들은 불쌍한 세대들입니다. 오로지 배고픈 시대를 극복하고자 앞으로 전진만을 해 온 세대들이고 경쟁일변도에 꿈을 이룬 세대들이고 더 이상 꿈이 없어서 오로지 더 많이 버는 데에 혈안인 세대들입니다.

인구절벽이 오면 그때는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꿈을 꿀 것이며 춤추고 노래를 부를 것이며 모든 정책의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돈 지상주의자들(Money Orieted Generation)의 퇴장이 이루어 지면 어쩌면 정의가 회복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제발 우리들의 뒤를 이을 청년세대들은 경제 지상제일주의를 외치는 청년세대들이 아니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