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읽기 시작했다.-3
오늘 나는 고흐의 죽음을 읽었다. 하늘은 흐리고 길가에 낙엽이 뒹군다.
나는 고흐의 죽음에 대한 내 마음을 아직 정확히 표현하질 못해서 심란하다. 나의 마음일랑 저 길 위에 나뒹구는 낙엽 한 잎의 마음밖에 더 될까? 이 넓은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내가 더구나 100여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고흐에게 무엇을 전하고 표현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삶과 죽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오직 화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떠나 현재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중요하며 죽음이후에는 그 작품이 자신을 말해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만큼 고흐는 아를에서 고독했고 오로지 그림에만 빠져들었다.
1988년 9월 어느 날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는 론강에 비친 별빛에 끌려 미친 듯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파리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아를에 온 지 8개월째, 외로움에 지친 그에게 밤하늘의 별들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반짝였고 아낌없는 빛을 쏟아주었다. 고흐는 맑게 갠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환상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지옥 같은 현실- 육체적 고통, 경제적 어려움, 고독 등-을 떠나 천상의 세계와 하나가 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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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정신이 바스러지도록 노력해서 작품을 완성했다할지라도 화가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무덤에 묻히는 법이지.
단지 약간 다른 것이 있다면 진정한 화가의 경우, 그 작품이 후세에 영원히 남아 말을 한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화가에게 가장 큰 과제는 죽음이 아니라 그런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자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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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크리스마스에 고갱은 그를 버리고 떠났고 그는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잘랐다.
그는 그 귀를 알고 지내던 창녀에게 선물했다. 마치 투우사가 쓰러진 소의 귀를 잘라 마음에 드는 관람석의 귀부인에게 선사하듯이…….
고흐는 자신이 투우사의 칼에 의해 쓰러진 소이자, 소를 쓰러트린 승리의 투우사라고 생각했다.
마을주민들은 그런 그를 고발하여 정신병원에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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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90년 7월 27일에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쐈다.
나는 그가 거의 마지막에 그렸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 7월)>이란 그림을 보고 있다.
그 그림은 하늘과 땅이라는 두 세계를 반으로 나눴다.
까마귀가 나는 화면 위의 하늘은 금새 폭풍우라도 내릴 듯 어둡고 칙칙하며 위로 오를수록 더 어둡다.
밀밭에 난 길은 세 줄기다. 밀밭은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강렬한 색채를 써서 황금색으로 빛난다.
나는 고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육체적 경제적 극한 상황에서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예술의 열정을 이룰 수 있는 길이 고흐에게는 없었다.
현실의 하늘은 까마귀만이 날고 있고 암울하고 어둡다. 밀밭 사이로 길은 있으되 어느 길로 가도 현실의 하늘에 가로막혀 있다.
외로움에 사무친 고흐가 가슴에 품고 있는 세계-별이 빛나는 천상의 세계-로 오르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
교회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에게 영구차 제공을 거절했다. 오죽 힘들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을까?-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죽어서 묘지를 얻지 못했다. 그의 소설이 교회를 모독했다는 이유다.-
고흐가 죽어서 가고자 했던 별이 빛나는 밤이 있는 천상의 세계로 가는 길은 그의 삶처럼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고흐는 그곳에서 별이 되었을 것이고 동생 테오와 함께 반짝이면서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가 고흐를 읽고 그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알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맙고 남은 삶의 지표로 삼고 싶다.
고흐의 말처럼 '살아서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자 팔리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화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진지한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