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의란 무엇일까? <8-11>
나는 떠날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여러 곳에 이력서를 팩스나 메일을
통해서 몇 군데 보내 두었다. 그리고 그제 퇴근하면서 시말서를 써서 S반장에게 주었다.
“좀 전해줘요. 어차피 떠나기는 떠나야 하니까.....”
"나도 오늘 낼 생각이어요. 그리고 한 두달만 개길려구요." S반장이 씩 웃는다.
퇴근하는데 죽전역 근처의 아파트에서 면접을 보라는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샤워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몸에서 나는 인취(人臭)를 없애고 옷도
갈아입고서 집을 나서니 도저히 시간이 모자라 택시를 탔다. 기전실 기사의 모집에 면접을
보라는 것은 거의 채용될 확률이 높았다. 아파트관리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인 듯한 젊은
직원이 이력서 서너 장을 들고 통화중이었다.
“아, 예, 그럼 그 돈에 근무를 하시겠다고요? 알았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를 보더니
소장한테 안내했다. 깡마르고 키가 작은 소장은 60살이 넘어 보였다. 나를 보자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말했다.
“소외라고? 우리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20만원을 깍고 근무할 수 있어요?” 나는
당황했다. 어차피 옮기려고 했고 조건도 좋아서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기가 막히다. 그래도
지금보다 10만원이 많다. 하지만 성질 급해 보이는 소장을 보자 맥이 탁 풀렸다.
“교통도 현재 근무하는 곳보다 불편하고.... 조금 더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안되겠구만, 그 돈에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 돈에
할려면 하고.....” 소장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돌아서 나왔다. 입에서 나오려는
욕을 안으로 삼켰다. 정말 황당하다.
버스는 죽전을 지나 빌딩 숲을 뱀처럼 꼬불꼬불 거리며 수지를 지난다. 갑자기 숨이 막혀
답답하다. 아파트며 빌딩의 콘크리트와 도로의 아스팔트, 보도블럭 어디고 빈틈이 없다.
비도 스밀 곳이 없고 바람도 길이 막혀 돌아가야 하고 먼 길가는 새들도 앉을 곳이 없다.
풍덕천을 지나 광교로 나오니 비로소 조금 숨통이 트인다. 신도시가 들어설 광교지구의
하늘은 온통 타워 크레인으로 가득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타워 크레인은 마치 커다란
항구의 하역 부두를 연상시킨다.
나는 수원 화성의 창룡문에서 일부러 버스를 내렸다. 성벽은 세상의 온갖 추한 것들을
다 막아주었고. 태양은 중천에 솟아 성안에 가득하였다. 햇볕을 가득 받아 눈 녹은 언덕에는
잔디가 곱고 그 아래 산비탈과 활터는 신방(新房)의 솜이불처럼 하얀 눈이 예쁘게 덮이어
있었다. 비둘기 서너 마리가 눈 녹은 황토 길 위에 모여서 먹이를 찾고 있다. 나는 팔달산
정상위에 우뚝 솟은 서장대(西將臺)의 위용과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아름다운
성벽을 바라보며 위대한 군주 정조를 생각했다.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축성(築城)하면서 당시 수원부에 10만 냥을 하사하시어 집값과
이사비용을 보상하고 주민에게는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주었으며, 화성축성을 위해
일부 민가를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곽을 세 번 구부렸다 폈다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애민 정신이 반영되어 버드나무 잎 모양의 현재의 화성이 탄생한 것이다. 정조는 공사
총 책임자를 총리대신 채제공(蔡濟恭)으로 하고 정약용(丁若鏞)을 설계책임자로 하여
화성의 축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축성원칙을 빨리 서두르지 말 것, 화려하게 하지 말 것,
기초를 단단히 쌓을 것으로 정했다. 공사기간 동안 인부들의 임금을 제 때에 철저하게
현금 지급하였으며 그 지급내역을 업종, 소속, 이름, 임금액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1796년10월의 낙성식에는 수고한 일꾼들을 초대하여 그간의 수고를 위로하였다.
그러니 화성의 인부들이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불과 2년여 만에
철거를 포함하여 그 큰 공사를 부실공사없이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 할 것, 겉모습을 화려하게 할 것, 경제성을 최대한 고려할 것의
원칙을 앞세우고 자랑하는 건설업자와 관급공사의 뇌물에 익숙한 건축관계 공무원들의
아쉬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건설관련 뇌물은 한번 받을 때가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결국 중독된다. 그리고 담배 한 대 피우듯 자연스러워진다.
장안문을 지나 나오는데 길가에 허름한 술집의 간판이 눈에 띈다. 간판에는 <모지리 세상>
이라고 써있었다.
어제 아침, 3동 101호에서 하수도가 역류한다는 민원이 있었다. 지하에 공동 하수구가
막힌 게 분명하였다. 예전에 한 번 작업한 일이 있는데 무척 힘들고 냄새나는 일이었다.
야속하게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민원 세대를 방문해서 조치해 주겠다고 대답한
나는 속이 탔다.
“Y주임님! 저런 경우 공동하수관이 막혔겠죠? 어떡해야 하나요?”
“몰라요. 아마 지하에서 막혔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Y주임은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말한다. 과장도 침묵이다. 식사 후 나는 혼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지하로 향했다.
“더러운 놈들, 이제 겨우 반년 되가는 나에게 맡기고 시침을 떼?" 연장을 챙겨 나오는데
과장이 뒤따라 왔다.
“왜 혼자 할려고 그래요.? 아시쟎아요. 혼자 하기는 힘들다는 거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일이 끝날 때쯤 Y주임이 합류해서 오후 4시가 돼서야 일을 끝냈으며, 온몸에서 구역질이
나는 냄새가 풍겼다. 나는 하수도 공사로 힘이 들었으므로 나도 몰래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창룡문 위에 서 있었다. 성 밖은 온통 적들로 포위되어 있었는데,
한 겨울의 찬바람이 벌판을 가로질러 모질게 모질게 불어왔다. 물대포를 앞세운 적들이
성 밖에서 자꾸 성벽을 기어 올라왔으므로, 나는 성벽 끝의 기와를 타고 곡예사처럼 뛰어
다니며 연장을 휘둘러 그들을 물리쳤다. 나는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온몸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채 열심히 싸웠으며 드디어 적들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방화수류정을 지나는데
<모지리 세상>이라는 주막(酒幕)근처의 장안문 쪽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급히 그 쪽으로
달려가는데 가슴이 뜨끔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적장이 쏜 화살에 맞아 나는 성벽에서
성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의 주검은 비단에 쌓여 창용문 근처 연무대의 단 위에 놓여 있었으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병사들이 창검을 세우고 도열했다. 병사들 앞으로 채제공과 정약용이 보였다.
한 가운데 정조가 다가와 나의 주검을 슬퍼하며,
“오! 장하다 소외여, 그대가 보여준 놀라운 투혼은 모질고 모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나는 지금 한 사람의 일꾼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서서 슬픔을 금하지 못하노라.” 나는 왕의 얼굴에 눈물이 스미는 것을 보며
감격하여 엉엉 울다가 잠이 깼다. 눈을 뜨니 기전실의 TV가 혼자 잘난 체를 하며 떠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우주로 보낼 발송문을 작성했다.
<발송문 10호>
4. 결어(계속)
남태평양 외진 곳에 폭 800m 밖에 안되는 ‘아누타’라는 작은 섬이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도 120km 떨어진 이곳에 250여명의 주민이 수천 년을 이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서 맨몸으로 낚시를 하고, 새소리를 흉내 내서 새를 사냥하며,
최소한의 경작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한다.
반면, 칠레에서 3,600km 떨어진 곳에 ‘이스터 섬’이 있다. 밀림이 무성했던 그 섬의
족장들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모아이’라는 석상을 경쟁적으로 세웠는데 그 크기가
3~12m가 되고 무게가 20t에 이른다고 한다. 석상은 점점 커져서 50t에 이르는 것도
발견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무를 다 잘라내자 나비와 벌들이 떠나고 생태가 파괴되어
모든 종족은 멸망되었으며, 지금은 섬 전체에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무인도가 되었다.
작고 척박한 환경의 아누타 섬과 수십 배 크기의 풍요의 이스터 섬의 운명은 무엇이
갈랐을까? 얼굴과 몸통만 남은 석상만이 지키는 썰렁한 섬이 우리의 희망인가? 부조화스럽게
커다란 석상의 얼굴은 우리의 탐욕과 교만의 모습이 아닐까?
여기에 제시된 것은 많은 방안 중에서 일부만 말했다. 이외에도 ‘금융’, ‘보험’,
‘사법제도’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죽산(竹山) 조봉암 전 진보당 당수가 사형된 지
52년 만에 무죄가 확정되었다. 사법살인의 결과다. 지금도 어디선가 예비 저격수들이
고귀한 법정 뒤에서 동원령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보의 공유‘와 ’건설 관련 리베이트의 회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행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보의 공유문제는 불법 비자금의 무형적 근원에 관한 것이고,
건설비리는 유형적 근원이기 때문이다.
‘의무위에 잠자는 자에 대한 경고’도 그렇다. 하늘같이 치솟은 주택가격 때문에
점점 더 열악한 주거인 원룸과 월세 방을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과 노숙자들에게,
‘쾌적한 주택에 살 권리는 기본적인 인권이다.’라는 핀란드식의 의무감을 연결시키는 것은
억지일까? 엄밀히 말하면 그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부동산 투기나 개발딱지, 나무심기나
벌통들이기를 하지 않은 착하고 말 잘듣는 백성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파이는 누가
먹었나?
비자금의 소비처는 1차적으로 정부 측 사람들임이 명백하다. 밝혀진 금액만도 천문학적인
그 비자금들이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졌을 리는 없다. 비자금이 점점 줄어들지 않는 한
우리의 사회는 거짓된 사회이다. 그리고 비자금을 앞세워 정의를 훼손하는 기업들도
그 비자금 앞에 농락당하는 정부도 반성해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새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어떻게 공무원 집단에게 ‘삼성사단’이란 비아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삼성 돈을 먹으면
뒤탈이 없다.’는 공무원(특히 판.검사)들의 속된 믿음은 사라져야 한다. ‘국민을 관료(官僚)의
공복(公僕)으로 보는 군림(君臨)하는 공무원’도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정부의 낙관적인 모든 구호나 통계 수치들이 허공에서 헛되이 춤출 뿐이다.
허수아비 춤 말이다.
‘비자금을 통해 그들이 마시는 술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요. 그들이 씹는 고기는 노동자의
뼈와 살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폐지와 고물을
주워 연명하는 사람들, 한 겨울에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위너’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화려한 디지털 시대와 모바일 시대에 소외의 그늘에서 이 땅에 하나의 좌표도 없이
‘클릭(Click)’ 한번으로 사라지는 허무한 실존처럼, ‘위너’들은 이런 문제가 안중(眼中)에
없고 ‘루저’들은 이런 문제에 아무런 힘이 없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