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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가와 서민

쥬띠 2019. 4. 11. 13:13

경찰국가란 게 있다.

17세기 18세기에 걸쳐 강력한 집권군주가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취하고 이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경찰력을 증대해 국민의 자유를 통제하던 시기의 얘기가 아니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기의 체재에 협조하는 기득권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력을 강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투경찰을 창설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의 국가를 말한다. 거기에 군대까지 동원하는 무지막지한 권력시대의 국가이고 일제 강점기의 경찰을 모범으로 삼아 고문과 폭력마저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던 시기의 국가를 말한다.

 

이 시기의 주도적인 권력이 경찰이고 검찰과 법원, 그리고 언론이었다. 그때는 시내에서 전투경찰의 차량과 훈련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최루탄 만드는 놈은 갑부가 됐을 거란 생각도 했던 적이 있다.

그 시기의 경찰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친일경찰문화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고 했을까?

최근, 사법부, 검찰, 경찰의 민낯이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국민의 편이 아니고 체제의 편에 선 친일경찰, 경찰국가적 경찰의 그림자를 본다.

 

감상교란 제보자가 버닝썬에서 생긴 폭력 피해를 고발했다. 그런 그가 경찰에 집단폭행 당하는 CCTV 영상을 보고 영화를 보는 줄 착각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공익제보자인 그는 젊고 정의감이 있는 청년이다. 경찰국가의 경찰이 제일 싫어하는 게 공익제보자이다. 그래서 경찰국가에서 공익제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피해자로 남기 십상이다.

이것만 아니다. 장자연을 죽게 만든 세력이 거대 권력(검사, 경찰, 언론 등)이므로 경찰국가 답게 해결이 안 된다.

김학의를 비롯한 숱한 권력형 사건들을 보면서 경찰국가를 떠올리게 되는 내가 두렵다.

80년대에 경찰총장이 취임할 때마다 한결같이 용공 좌익세력을 철저히 척결하겠다.’고 앵무새처럼 말할 때, 나는 그들이 취임 선언문이란 걸 낭독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쩌면 저렇게 똑 같이 말하나?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은 사람은 친일적이고 경찰국가적인 경찰이 그리울 것이다. 친일파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도, 장자연의 가해자가 안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경찰의 덕이 아니겠는가?

 

서민은 민주경찰을 원한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보듯 서민적인 고위 공직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이미선의 청문회, 주식은 남편이 해서 잘 모른다고 한다. 만일 남편이 청문회 나온다면 아내가 해서 자신은 잘 모른다고 했을 것만 같다. 어디 이뿐이랴?)

도대체 가난한 고위직은 다 사라졌나 보다. 그들은 이미 귀족이므로 경찰국가의 경찰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염려스러운 것은 지금의 대기업, 고위직, 고위경찰, 검사, 법관들의 치부가 최근의 사건들로 다 드러났다. 그들은 실제로는 다른 도덕률과 기준을 가지고 갑질과 돈질을 하며 산다.

장자연이 기득권자의 딸이었다면 경찰에 의해 벌써 해결되었을 사건이 아직도 산으로 들로 헤매고 있다.

경찰국가의 호위아래 살고자 하는 그들이 서민을 대변해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서민들은 더욱 숨죽이며 살던 가,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