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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자(勞者)의 노래(5)-궁평리

쥬띠 2011. 1. 8. 18:11

 

                            [궁평리]

 

   "궁평리 하늘위로 세월이 흐른다.

   모든 정겨운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키지도 몾할 약속, 이루지 몾한 꿈, 피지못한 사랑,

   젊어보지 몾한 청춘

 

   아! 저 맴도는 물결따라 모든 것이 떠나고 있다.

   그 많은 술과 노래들은 다 어데로 가고

   갈매기 우짖는 텅빈 갯벌에 그대는 난파선마냥 쳐박혀 있는가?

   희망도 꿈도 어눌해져버린 흐린 하늘에는

   젊음과 사랑의 흔적조차 없구나.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수원역은 전국의 어느 역보다도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매일 온갖 인간의 군상들이

모여들고 머물고 떠나간다. 역의 동북쪽 끄트머리에 우리의 영토인 홍등가가 있다. 그 옛날

인파로 북쩍이던 터미널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우리의 엄마는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는 참 좋았었는데..... "

라며 곧잘 중얼거린다.

 

   그 고속터미널이 헐리고 그 자리에 대형 빌딩이 들어섰다. 좁고 낮은 우리의 땅을

내려다 보며 오만하게 버티어 선 건물은 우리에게 떠날 때가 되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수원비행장의 고도제한 때문에 더올라가지 몾한 바벨탑은 7층에서 9층에

이르는 대형 영화관을 비롯하여 온갖 오락시설과 상업시설이 들어선다고 했다. 나는

우리의 영토입구에 있는 조그만 영화관들을 떠올렸다. 하루에 3편씩 상영하는 극장이라니....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건물이 준공된 지 한해가 다가도록 분양이 안되자 우리는 그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녘부터 경찰이 쫙 깔리고 닥치는대로 우리의 엄마들을 잡아갔다. 곧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주일이 넘어도 그들은 집요하게 밤이면 나타나 우리의 영토를

에워싸는 바람에 출입하는 사람마져 끊겨버렸고, 차가운 북풍만이 불꺼진 초라한 거리를

함부로 헤집고 다녔다. 우리는 바깥문을 삐섬 열어둔 채로 불꺼진 방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러다 굶어 죽겠다'느니, '데모라도 하자'느니, 수다를 떨면서 애꿎은 담배만 줄창 피워댔다.

손님이 없다보니 화장도 안한 우리들은 서로 건너편을 흘끔 바라보면서 깜짝 놀랬다. 서로의

모습이 영락없이 산발한 귀신모양이었으니까...... 가끔씩 갈 곳 없는 외국인과 노동자들이

낮과 밤의 구별이 없어진 이 곳을 들개나 하이에나처럼 새벽부터 어슬렁거렸다.

 

   참 오랫만이다. 꿈같은 외출이라니, 우리의 엄마가 외출을 허락한 것이다. 환한 태양볕을

쳐다보며 막 출소한 죄수의 심정을 가늠해 본다. 어차피 영업도 몾할 바에 인심을 쓴 것이다.

   "너무 늦게 오지마, 내일부터는 데모라도 할 모양인게"

엄마는 내 눈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한다. 오랫동안 갈 곳없이 살아온 나와 엄마는 지금, 서로

믿음의 끈을 살짝 당겨보고 있는 것이다.

 

   "오빠! 놀랐지?  미안해, 전화해서"

   "아니야, 마침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가고 싶은 데라도?"

그가 뜸을 들이며 대답한다. 

   "갑갑해서, 바다가 보고싶어 소금냄새가 그리워"

   " ,,,,,,,,,,,, "

차는 제부도에서 방향을 궁평리로 바꿨다. 그는조금이라도 더 한갖진 곳을 원했을 것이다.

무언가 말을 할려해도 말이되어 나오지 않았다. 침묵의 대지는 넓고도 깊었다.

   "어쩌면 나는 전화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홀로 중얼거리며 목걸이를 매만졌다. 호랑이 발톱 끝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러본다. 여린 통증이

가슴끝을 찌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수의 아픔 위에,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이

지금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는 사랑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이런 날이...

커다란 눈망울의 소녀와 늙은 창녀의 주름진 얼굴이 허공에 겹친다.

   "우리는 하나일까?"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짠내가 풍기는 것 같다. 이어 탁 터진 광장을 지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탁터진 궁평리의 갯벌위로 갈매기가 난다. 곤색 쟈켓에 면바지를 받쳐입은 그가 썬글라스를

벗으며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어준다. 그가 눈부시게 멋져 보인다. 

   "오빠! 결혼했어?"

2층 음식점의 창가에 앉아서 어색함을 없애려 내가 말했다.

   "응"

   "늦었지만 축하해, 진심이야."

   "고마워"

그는 애써 태연해 했다. 나는 맛있게 회를 먹을려고 했지만 결국 소주만 마시고 있다. 그의

술잔은 처음 그대로다. 갈매기가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다. 창가의 하늘이 흐려지고 있다. 

하늘은 황금물결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란히 방파제를 천천히

걸었다. 노을이 나를 파도치게 했다.  

   "어떻게 시간을 냈어?"

   "그동안 조금 쉬었어. 경찰이 쭉 깔려서 이 짓도 못해 먹게해,,,,,"

   "서울서도 난리던데... 부동산업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거야."

그가 다시  침묵에 빠진다. 우수에 젖은 그의 얼굴너머로 방금 켜진 가로등 등불이 반짝인다.

   "오빠! 오늘 너무 멋있다. 그리고 고마워"

   "고맙긴......"

방파제 끝으로 파도가 넘실댄다. 나는 그 방파제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술로 상기된 내

얼굴을 석양이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오늘 밖에서 보니까 더 예쁘다."

   "거짓말"

   "아니야? 정말이야. 정말 예쁘다."

   "피이"

   "피이라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어색함을 깨기위해 조용히 노래했다.

   "황혼이 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슴깊이 맺은 사랑 영원토록 잊을 길은 없는데

   별처럼 아름답던 그 추억이 내 가슴을 울려주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방파제끝으로 급히 걸어갔다. 부는 바람에

물결이 철썩이며 방파제 위로 넘친다. 글썽이는 눈물너머로 파도가 넘실댄다. 갑자기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까닭모를 허무가 가슴에 사무쳤다. 죽음이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아! 이런 탈출구가 있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에게 삶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적어도 오빠만은, 오빠의 행복한 둥지만은

지켜주어야 한다." 

오빠가 뒤에서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 때 방파제에 부딪친 파도가 방파제 위로 굽이쳤다.

"엄마야!"

나는 급히 몸을 빼며 비틀거렸다.

   "조심해"

그가 급히 나를 안았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평온이 온몸에 퍼진다. 겨우 중심을 잡은 내가 몸을 뺄려고

했다. 그가 나를 세우고 다시 품에 안았다. 뜨거운 입맞춤에 나는 얼어버렸다. 파도가 다시 부숴지며

우리의 발끝을 적셨다.

   잠시후 , 그가 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지난 시간 정말 고마웠어....."

어두워진 차안에서 돌아오며

   "오빠! 지난 시간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오빠에게 살며시 안기며 말했다. 그의 팔이 나를 감싼다.

 

 

   연주가 끝났다. 삶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더욱 힘겨워지겠지,,,,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치환될 수 없는 '순수의 세계'로 ,,,,,, 그가 나를 우리의 영토  어귀에 내려주고 떠나갔다. 온갖 잡년들이

설쳐대며, 우리의 밥줄을 위협하는 인터넷방, 노래방, 단란주점과 모텔의 숲을지나고 세편씩 상영하는 

싸구려 영화관을을 지나 싸늘하게 식어버린 내 둥지로.....

 

출처 : 만다라문학
글쓴이 : 공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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