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노자(勞者)의 노래(3)- 요지기, 요자이
[요지기, 요자이]
어두운 천장속에서 전산볼트를 양손에 잡고 허공에서 그네타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활짝 펼친 육단 사다리 타고
"향단아! 그네줄을 밀어다오." 크게 외치네,
굵은 케이블 한자락을 끌어안고
"요지기, 요자이"
노다지를 캐는 광부처럼
"요지기, 요자이"
석면아, 유리솜아, 용접 불꽃아, 허공을 맴도는 쇠타는 냄새야,
이름모를 잡 것들아!
모두 덤벼라. 나의 뻰치는 검투사의 칼끝보다 강하지.
나는 하얀 분칠의 가부끼 배우가 되어 허공에서 춤추고 노래하네.
"요지기, 요자이"
가압장, 하수처리장, 석유화학 콤비나트 어디든 좋다.
까데기, 땅파기, 개잡부 무엇이라도 좋다.
그저 오늘도 한대가리.
"요지기, 요자이"
바람은 시원하고 석양은 부드럽지.
"요지기, 요자이"
오늘도 우리는 삶을 꿈꾸고 꿈을 살아가지.
내 나라는 율도국! 밤마다 찾아 가는 곳.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가 행해지는 곳.
초가집에 멋대로 살아도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언제나 평화가 물같이 흐르는 곳.
권력의 사냥개, 전관예우도 없고,
성상납이나 뇌물받으면 길동이형한테 죽도록 터지는 곳.
석면보다 고약한 놈들도 벌벌 떨지.
"벌벌벌... 벌벌벌......"
한대가리 한대가리가 점점 힘들어져도
나의 노래는 우렁차게
"요지기 요자이"
눈알이 서글서글거려도,
존재의 가벼움에, 삶의 버거움에 치를 떨어도
"향단아! 그네줄을 밀어다오. 저 솜사탕같은 구름넘어 율도국으로..."
"난나나, 난나나 '''''"
알람이 노래를 한다.
나는 자동인형처럼 몸이 솟구친다.
벌써 몇날짼가? 쉬어보지 못한 날이
벌써 몇날짼가? 알해보지 못한 날이
일어나자, 뛰어 나가자.
오늘은 일하고 내일은 짤려도
오늘은 용병, 내일은 프리렌서
이 아파트는 중국젠가? 한국젠가?
천장속은 좁아라, 스툴에 갇힌 돼지처럼, 부리짤린 닭처럼
그래도 화는 내지말고
"요지기, 요자이"
[ 노자(勞者)의 어느 하루]
"난나나, 난나나, 난나나 나나나.... "
나는 용수철처럼 튕겨져 일어났다. 세면하는데 손이 시럽다. 날이 몹시 추웠다.
어제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은 전국이 영하로 내려가고, 눈이 오는 곳도 있겠다.'고
했다. 어두운 새벽길에 집을 나서면서
"조끼라도 입고 나올걸,,,,,,, "하고 후회했다.
"씨팔놈들, 아침 여섯시 삼십분까지 나오라니 말이 돼? 하기사 삼십분이나 사십분이나
그게 그건데,,, "
런링셔츠, 팬티 한장에 작업복을 갈아 입을 때 몸이 덜덜 떨렸다.
어슴프레한 새벽 작업장의 광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체조를 하기 위해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으와, 춥다. 빨리 체조하자!"
"스팔, 체조는 무슨 체조, 그냥 들어가자"
"나는 체조가 좋은디.... 몸도 풀리고, 건강에도 좋고"
"좃같은 새끼 너나 하루종일 해라."
이곳 저곳에서 웅성거리고 이내 음악과 함께 국민체조가 시작되었다.
나는 엉거주춤 따라하며
"아니? 체조는 좋다 이거여, 근데 왜 꼭두새벽이냐구?"
하며 궁시렁거렸다.
체조가 끝났다. 이어서 안전교육이다. 현장소장이 훈시를 시작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제시하는 무지개운동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소장이 내려가고 안전구호를 외치고 '무지개운동에 적극 동참하자'라는 플래카드를
허리에 차고 주변청소를 10분간 했다. 오늘은 매월 1일에 하는 안전점검의 날인가 뭔가
하는 날이다. 그래서 10분 당겨 출근한 것이다.
무지개운동이란 무지개 일곱색깔의 첫자를 따서 '빨주노초파남보'
운동이다.
"'빨', 빨리빨리를 추방하여 안전사고 몰아내자." 말하자면 안전이 제일이다란
얘기다.
일곱시에 1회용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제각각의 짐을 챙겨 20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미 '카(화물용 임시 엘리베이터)'는 '조적'이나 '모래조'에 뺏겨, 지하 2층부터 꼭대기에
걸어 올라왔을 때는 숨이 턱에 차고 다리는 후둘거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특공대처럼 옥상의 자기 위치로 가서 각자 자기의 파이프 다발을 깔기 시작한다.
햇살이 '야기리(옥상에 쳐진 이동용 임시벽)' 틈사이로 스며든다.
"형님! 오늘 레미콘 붓는 날이요. 빨리 빨리 허쇼잉, 형님이 제일 늦당게. 그리고 오늘
야근이요. 그리 아쇼잉"
추위에 뻣뻣해진 파란 파이프(통신용)를 잡고나니 손은 시럽고 귓가에는 반장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다른 젊은 놈들은 이미 옥상의 철근들 사이로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회색의
파이프를 깔아댄다. 그들의 똥구멍에서는 거미들이 그러하듯 쉬지않고 파이프가 나오는
것이다. 오늘중으로 4개동의 '슬라브판(철근을 깔고 파이프를 깔고 콘크리트를 붓는 등의
일련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중국사람들이 철근작업과 형틀작업을 도맡아 버리자 아파트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요일도 없이 기계처럼 일하는 그들은, 마치 6. 25의 인해전술로
밀려오던 중공군을 방불케 한다. 안전은 뒷전이고 우리네보다도 더 '빨리 빨리'에 뛰어나다.
나는 보름째 쉬지 못하고 야근인데, 동료중에는 두달째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있다.
차마 오는 일요일 쉬어야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빨리 빨리"를 추방하기 위해
더욱 빨리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 형님은대단해요. 두달째 야근이라니,,,,, 만근수당도 받았다면서요?"
"아, 나도 죽겄어, 감기도 안떨어지고, 근데 쉴 수가 있어야지. 쉴려면 꼭 레미콘이다.
누가 술쳐먹고 안나오니, 오는 일요일에는 무조건 쉴거야"
"아,, 나도 쉬어야 되는데..." 나는속으로 중얼거렸다.
밤이 오고 있다. 어두워진 하늘위로 타워크레인이 별처럼 등불을 켜놓고 우리를 내려다 본다.
크레인에 매달린 레미콘 틀(레미콘을 붓기 위한 고정틀)이 우주선처럼 내려 앉는다.
"트라게, 트라게, 마게"
레미콘 팀장이 무전기에대고 소리치며 연신 크레인 운전원에게 수신호를보낸다.
"씨발놈들이 배관작업도 안끝났는데 레미콘 붓고 난리야"
젊은 친구의 소리는 허공에 사라지고, 이내 옥상의 한쪽에서부터 레미콘이 쏟아지고 있다.
"내일 아침에 비나 팍 와버려라. 철근들 일 못하게"
내가 소리치자
"짱깨들이라면 나는 밥맛 없어, 씨팔, 일요일과 밤에는 공사를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야지,
아흐 나쁜 놈들"
하고 젊은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상기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니 불빛사이로 하얀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야기리 너머 시내가 보인다. 반대편 숙지산은 잠들어 가는데 저 아래 시내는 불빛이 화려
하다. 나는 지금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공장엔 작업등이 밤 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나는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나 이내 내리는 눈발을 타고 20층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텅 빈 허공에 아무런 반향도 남기지 못하고, 거미가 실을 뽑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