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바라바를 찾아서
바라바는 어디 있는가? 바라바를 생각하다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렸다. 젊디 젊은 시절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의 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산 것이 30년도 더 전이다. 하지만 다른 지식과 마찬가지로 성경지식이 전무하였던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작은 활자에 빼곡히 들어 찬 이야기-열심당원 유다와 십자가를 만드는 목수인 예수이야기-는 마치 발정난 암캐와 열에 들뜬 수캐들의 이야기처럼 산만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서 급기야는 중간 중간 읽다가 포기했다.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니 책은 낡고 활자가 작아서 가독성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하지만 혹시 그 속에 바라바 이야기가 있다면 그깟 수고야 무슨 대수랴?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정말 좋아한다. 그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에게 자유인이란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1964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에서 파도가 넘실대는 지중해 해변을 배경으로 모래를 밟으며 춤추던 조르바(앤소니 킨)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스럽던가! 모든 것을 잃고도 웃고 산투리악기의 감미로운 가락에 맞춰 춤을 출 수있는 조르바! 나도 언젠가 춤을 배워 마음껏 추워보는 로망이 남아있다.
드디어 나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읽기를 끝마쳤다. 나는 그가 왜 그리스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책을 썼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파문을 당하고 종부성사를 받지 못하고 죽자 그는 성당묘지에 묻히지도 못하게 된다. 그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마련해준 묘지에는 나무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지금도 크레타섬의 언덕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묘지는 오히려 더 명소가 되었다. 나는 그가 남긴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겁내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_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예수의 인간성 부각과 유다와의 거래, 막달라 마리아의 창녀생활, 나사로의 두 동생과의 동거 등, 겁이나는 이야기-지금의 나는 성경지식이 많이 늘었으므로-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이야기가 꿈으로 묘사되고 최후에는 그 유혹을 극복하고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얘기지만 그런 이야기는 그리스정교는 물론 지금의 한국교회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12제자중 유다가 예수의 부탁에 의해 가야바에게 예수를 고발하고 거의 예수와 대등하게 묘사된 점은 두렵기 까지하다.
나는 그 속에서 바라바를 눈이 빠져라 하고 찾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터무니 없는 거짓 말이 싫었는지 바라바 얘기는 별로 기술하지 않았다. 바라바가 열심당원이었고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란 이유로 돌멩이로 죽이려고 하고, 부활한 나사로를 다시 죽이고 그 일로 로마에 체포되는 정도였다.
다시 니코스 카잔차키스 얘기를 하련다. 그는 1883년 오스만 투르크 지배하의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출생했다. 그의 조부와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조국독립을 위해 빨치산 활동도 했다. 그가 1883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나의 주목을 끈다. 그 해는 칼 마르크스가 죽었고 그 해에 기라성 같은 위인들이 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우상이며 문학 자체인 <프란츠 카프카>도 바로 그 해에 태어났다.
1951년도에는 스웨덴의 페르 라게르비스트가 <바라바>로 노벨상을 받았다. 1957년도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나 1표차로 까뮈에게 고배를 마신 것은 아쉽다. 아! 나는 까뮈도 너무 사랑한다. <이방인>을 두 번 읽고 감동받았으므로......... 두명 다 받았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기회가 되어 그리스에 간다면 나는 그의 묘에 기필코 헌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