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경숙 작가의 표절시비에 대한 나의 생각

쥬띠 2015. 6. 19. 11:01

   최근 이응준 소설가가 제기한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에 대하여 말이 많습니다.  나는 우선 이응준 소설가의 용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나 문창과 학생들의 우유부단하고 어정쩡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표절을 규탄하는 것은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에게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말은 매우 귀감이 되는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 경제, 사회에서 부정직한 사람들이, 낯 두꺼운 사람들이 득세를 하고, 이제는 문학까지 그런 실정에 바른 소리를 해야 될 사람들까지 그런 걸 보면 사회 전체가 중증이라는 생각입니다. '우국'이라는 소설을 알지 못한다면서 쪽집게처럼 문장이 같다면 신내림을 받은 것인지?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베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앞 사람의 것을 배우고 습득합니다. 그래서 저작권도 작가에 영원히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한을 정해 놓고 일정의 세월이 지나면 권리를 소멸시키죠.

 

   신경숙 작가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외에 '우국'이란 소설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분은 표절부분에 책갈피가 끼어져 있거나 줄이 그어진 '우국'이란 소설을 서가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표절에 대해 유혹을 느낍니다. 하지만 베껴쓰기에 앞서 보다 자기의 생각과 삶을 육화시켜 자기의 글로 바꿔 써야지요. 돈에 욕심이 팔려 많은 청탁을 받아놓고 출판사의 출판기일에 쫓겨 옮겨다 붙이는 일이 관행처럼 돼서야 어찌 문학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다작을 하며 부를 쌓기 보다는 한 작품이라도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성찰하는 작가가 되기를 바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하퍼 리라는 미국의 유명작가는 <앵무새 죽이기>란 작품을 30대에 썼습니다. 하지만 숱한 출판사의 유혹에도 다작을 하지는 않았죠. 조정래 선생은 그야말로 육필로 10년 이상을 글 감옥에 앉아서 엉덩이로 글을 썼지요. 팔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숱한 휼륭한 작가가 자기만의 문체로 글을 썼습니다. 신경숙 작가가 유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서 ‘<우국>이란 소설 자체를 본 일이 없다.’라고 말한 점은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진정한 문인이라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 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오로지 ‘문학만이 나의 길이다.’ 라고 자위하며 청춘을 바치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학이 나를 외면한다 싶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유명작가와 문단권력이 그 아픔을 알아주지는 않겠지요. 어차피 깨어있는 지성은 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아프게 합니다. 언제나 표상만 있고 본질이 없어진, 강자에 약한 우리의 사회현실이 아프지만 그래도 용기 있는 이응준 소설가를 보며 희망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