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인 일요일에는 눈이 엄청나게 왔다. S반장은
“오늘 차 두고 갈래요. 오늘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요. 보나마나 우리 집근처에 주차자리도
없을 거고, 내일 아침에 눈 치울 인간도 없으니까요. 여기도 눈 오면 자기 동 앞에는
좀 주민들이 쓸어줘야 하는데....”
“그러게 말야. 그리고 요즘 일기예보도 잘 맞더라고. 눈 치우려면 고생 좀 해야겠는데....
나는 아파트 새소리가 맘에 안 들어 무슨 새가 돼지 뭭 따는 소리를 내니?”
“새만 그래요? 눈 와도 손 하나 까딱 안하는 것 봐요. 그리고 동 대표, 소장 하는
꼬락서니를 봐요. 나는 여자소장이라면 질색예요. 동탄에 있을 때 여자소장하고 대판
싸웠쟎아요. 그나저나 집에는 가야될 텐데, 가기도 싫고.... 집에 가야 아무도 없고,, ”
“오늘은 일요일인데 천천히 가. 내가 점심 사 줄게. 그런데 여자 소장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말은 좀 그렇다. 좋은 여자소장도 있을 수 있쟎아? 그러니까 장가를 못가지.”
“나는 장가 안 갈 거예요. 내가 그리는 여자는 우리 엄마 같은 여자,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여자, 그런 여자가 좋아요. 그리고 여자소장은 특징이 있어요. 기사들한테 경리할 때 하도
당했거나 어떤 콤플렉스가 있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다가 결정적일 때 꼭 뒤통수를
친다니까요. 한두 번 당하는 게 아녀요. 그리고 동 대표들도 꼭 자기 사람 심을려고 그러고
하옇튼 아파트는 더러운 곳이죠. 그래도 나는 기전실 근무가 좋아요.”
“S반장은 꿈이 뭐야?”
“꿈 요? 없어요. 아, 딱 하나 있다. 자격증 따서 전기과장이 되는 거, 조그만 아파트에서
교대 근무하는 과장이 되고파요. 그리고 늙으면 경비 할려고요.”
둘이 점심을 먹고 오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하듯 펑펑
쏟아졌다. S반장의 꿈이 경비라는 얘기에 생각이 자꾸 맴돈다. 교대근무도 오래 할 것은
못된다. 만사가 귀찮고 자꾸 게을러진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저녁에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2초소 경비가 기침을 콜록이며 가로등 불빛아래서
눈을 쓸고 있었다.
“추운데 수고하십니다.”하고 인사를 건네자,
“아유 죽겠어, 몸살감기로 죽겠는데 안 치울 수도 없고, 벌써 세 번째 눈치우고 있어,
치우고 나면 또 오고 이제 이게 끝이야, 더 오면 난 몰라.”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도 이상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다. 평소 나에게도 서로 인사도 없고 말도
없었는데 반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눈 그만 치워요. 지금 또 내리는데...” 3초소에 들러 말하기 좋아하는 경비에게 인사를 했다.
“이제 나도 그만 치울거야. 어깨쭉지가 아파죽겠어. 안 치울래도 사람들이 밟으면 더
치우기가 어렵거든 그래서 길이라도 치울려고 그러는 건데,,, 할 수 없어, 할 만큼 했는데.” 그가
어깨를 만지며 반갑게 맞는다.
“나 이달 말까지만 할려고 그래, 힘들어서 못하겠어, 업체도 바뀌고....”
“아니, 그만 두면 뭘 해요. 그리고 이달 말만 지나가면 눈도 안 올 텐데요. 10만원 올려
준다고 했쟎아요?”
“아니, 3월까지 눈이 와, 그리고 이미 마음이 떠났어, 저번에 얘기했던 데에 땅 220평이
나왔는데 그걸 사기로 했어. 애들도 다 컸고 우리 부부만 가서 농사지을래, 소외씨는 옛날에
농장을 해봤다며?”
“문경 말이죠? 좋은 데지요. 새제, 수안보, 월악산도 가깝고,,,, 농사 힘들어요. 나는 젊을
때니까 많이 했지만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볼 때는 개 두 마리, 닭, 토종닭으로 이, 삼십 마리,
고추, 감자, 배추, 무 조금씩만 심어 먹으면 돼요.” 갑자기 나도 농사나 지으며 그런 곳에 살고
싶어 졌다.
“그곳은 땅콩이 잘된다니까. 고추대신 땅콩하고 고구마를 심어야지... ” 그의 얼굴이
환해지며 미소가 번진다. 따스한 난로위에서 주전자가 수증기를 뿜어내고 가로등 불빛에
젖은 흰 눈송이가 천천히 창밖으로 내린다. 덩달아 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시거든 연락이나 주세요. 나도 때려 치면 그 근처에 움막이라도 짓고 농사짓게요.
수고하세요.” 기전실로 내려오는데 기전실 앞의 소나무 몇 그루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반겨 맞는다. 갑자기 옛날 농장 하던 날들이 그림처럼 아련히 떠올랐다.
한 때, 이씨가 집성촌을 이룬 의왕의 ‘능안마을’에 살았다. 이곳의 이씨들은 주로 음식점이나
화원(花園)을 하며 살았는데, 이곳으로 처음 자리를 잡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이
‘자손들에게 절대 공부시키지 말라’고 해서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단다. 나는 타성(他姓)받이로
이곳에 오래 살고 싶었지만 이곳의 이씨들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린벨트 해제 등
부동산 경기도 한 몫을 해서 피같은 농장을 두고 타의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픈 추억이
서려있는 그곳의 사람들은 여자들을 이름대신 ‘저풀댁’, ‘미국할머니’, 윗말댁 등으로 불렀다.
미국할머니는 그곳에서 미국을 갔다 온 유일한 여자이었던 것이다
능안마을은 멀리 좌로는 관악산이, 그리고 우로는 백운산이 자리잡고, 그 사이에 청계산이
청계사(淸溪寺)라는 절을 산 중턱에 품고 있으며, 마을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는데
백운산의 이름을 따서 백운호수라고 불렀지만, 청계산을 고집해서 일부는 청계호수라고도
불렀다. 뒤쪽에는 임영대군이 낙양(洛陽)인 한양을 사모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모락산(慕洛山)이
한 겨울의 북풍과 세상의 모든 잡귀(雜鬼)를 단절시켜 주었다. 마을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깡촌이지만 5분 만 차를 타고 나오면 세상의 온갖 길로 통하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곳이다.
한 겨울 날 마을에 들어서면, 졸졸 개울물 소리가 들리고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하얀 백설기 같은 눈이 ‘후두둑’하고 떨어지면, 나는 갑자기 문학 소년이 되어 ‘
가와바다 야쓰나리’가 쓴 ‘설국(雪國)’의 첫머리를 떠올리곤 무척 행복했었다. 삶의 고달픔도
아른해 지고 모든 것이 낭만으로 채색되는 것이다.
봄이 오면 맑은 호수 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고 산등성이로 구름들이 용틀임하며 피어 올랐다.
여름날, 호수위로 푸른 산 그림자와 뭉게구름이 어리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상
스키어들이 싱그러움을 선물했다. 가을이면 만산에 홍엽(紅葉)이 물들고 산밤 줍는 사람들과
등산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집주위로 오르내렸다.
도연명(陶淵明)의 ‘사시(四時)’라는 시가 정말로 잘 어울리는 곳이다.
“春水 滿四澤 (봄날의 물은 호수마다 가득하고)
夏雲 多奇峯 (여름의 구름은 산봉우리를 덮는구나)
秋月 揚明輝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뿜어내고)
冬嶺 秀孤松 (겨울 산엔 외로운 소나무가 아름다워라)“
삶이 고달플 때에는 농장의 뒤뜰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모락산 등성이며 하늘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자연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푸쉬킨의 시처럼
현재가 언제나 슬프다면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그러나 자연의 치유는 얼마나 위대한가?
삶에 지치고, 화병(火病)으로, 육신의 피곤함으로 무너지고 있을 때, 계곡을 휘도는 바람이
내 슬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속삭였다. ‘소외, 울지마, 그리고 힘내....’
마을 초입 공터에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민원이 심하면 사라졌다가 밤이면 다시 장사를
하는 것이었고, 목이 좋아 벡운호수의 카페촌에 왔던 아베크족들이 즐겨 찾았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납품을 끝내고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면 긴장이 풀어지며 술이 땡겼다.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쭈삣거리며 잔술과 안주 오천원 어치를 부탁하면 포장마차 여주인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모든 안주가 만 원 이상인 줄 알지만 사정하여 술 두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아! 그때 목젖을 스치고 지나간 술들의 위대함, 지고(至高)의 순수함이여....
두고두고 그대를 찬양하리니...’ 포장마차를 나서면 백운호수 위에 네온의 화려한 불빛이
일렁이며 내 등 뒤에서 손짓했다.
“아저씨! 정화조는 들어가 보세요? 가끔 들어가 봐야 돼요. 지하라 얼지는 않는데, 솔직히
나도 요즘 추워서 안 들어 가봤는데 오늘 한번 들어가 볼께요. 그리고 주말은 안 가봐도
평일에는 한번 씩 들어가 보자구요.” S반장이 어제 퇴근하는데 말했다.
정화조가 있는 지하는 여름에는 날파리와 거미들이 득시글하고 냄새가 나서 들어가기가
싫은 곳이다. 추워지면서 들어가는 회수가 적어지고 이제는 안 들어 가 본 지가 한 열흘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출근 하니까 S반장이 볼멘 소리를 한다.
“아유, 씨팔, 다시는 Y주임하고 말 안해. 나이대접해줬더니 뒤통수나 까고...” 내가 이유를 묻자.
“어제 정화조를 가 봤어요. 가보니까 전등 두 개가 나가 있구요. 휀 벨트가 끊어져 있더라구요.
그래서 전등도 갈고 휀 벨트도 갈아 줬거든요.”
“아니? 거기에 휀 벨트도 달려 있어?”
“당연하죠. 배기시켜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소장이 부르더라고요. 왜 또 부르나 했더니
정화조 가봤냐는 거예요. 그래서 가봤다고 했더니, 뭐래는지 아세요? 휀 벨트가 끊어지지
않았냐는 거예요. 내가 기가 막혀서,,,, 아침에 안 가봤으면 큰일 날 뻔 했다니까요.”
Y주임이 소장한테 일러바친 것이다. 도데체 그 인간은 우리를 자기보다 하급의 인간으로
취급한다. 우리하고는 어울리려고 하지를 않는다. 동대표, 소장, 과장 외에는 사람취급을
않는다. 휀 벨트가 나갔으면 지가 갈면 되지, 그걸 소장한테 고자질하다니.... 시말서 얘기
나온 김에 아예 둘 중에 하나를 떨굴 심산임이 분명하다. ‘뻐꾸기새끼’같은 놈이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유탄 맞기 십상이다 조심해야 한다.
오후에 소장이 불렀다.
“소외씨 도데체 일지를 보고 쓰는 거예요?”하면서 일지를 펴서 보여준다. 정화조 점검대장에
메모가 붙어 있었고. ‘시간을 정확히 기록할 것’이라고 써 있었다. 이상없음에 똥글뱅이만 치고
점검시간과 점검자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정화조 점검은 똑바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왜 시말서 안 써요? 오늘 중으로 시말서
쓰세요.” 소장이 일어서서 나간다. 변명이 듣기 싫은 것이다. Y주임은 못들은 척 ‘화이트 보드’에
보드 마커로 무언가를 쓰고 있다. 사무실에 정적이 고여 온다.
기전실로 내려오는데 왠지 허전하고 이상하다. 과장도 일지를 봤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자기가 대신 이름과 시간을 써넣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큰 문제도 아닌데 ....
갑자기 기전실이 낯설고 허전해 보인다. 비무장지대의 울타리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과장이 돌아섰을까? 도데체 왜 이러는가? 동 대표 회장이 시말서를 요구하는데 아무도
시말서를 안내니까 소장에게 닦달을 하고 우선 마음약한 나부터 치울려고 한다?’ 그렇다!
무장지대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인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푸른 초원에 사슴이 뛰어 논다. 갑자기 사슴이 놀라 동작을
멈춘다. 그 커다란 눈망울이 뒤돌아본다. 서로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총성이 울린다. ‘쾅!’
그리고 숲도 사슴도 다 사라진다.
저녁에 시말서를 썼다. 내일 아침에 제출할 것이다. 꿈속에서 나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판사가 법복(法服)을 입고 나타나더니 이내 소장으로 변했다.
“소외씨! 더 버터 봐야 소용없어, 당신은 지금 징역을 살고 있는 거라구, 아직도 모르겠어?
종신형 말이야. 농장, 노가다, 기전기사 이런 것들이 우리 교도소에서 명령하는 당신의 임무야.
이제 이곳을 떠나 다른 유형지로 가야 한다구 이 멍청아! 뭐, 우----주? 너는 이 형무소 밖을
벗어날 수 없어.” 소장의 법복이 갑자기 마귀의 외투로 변하더니 ‘밤의 여왕’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옥의 복수’란 아리아를 부르며 사라졌다.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발송문 9호>
4. 결어
세상은 비정규직으로 넘쳐나고 있다. 대기업들을 필두로 기업들은 ‘아웃 소싱’이나
협력업체, 용역사 등을 통해서 허접하고 골치 아픈 일들을 다투어 떠넘기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전가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 되었다. 아파트 관리업체
입찰에서 단돈 1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청소, 경비 등 비교적 나이가
많고 힘없는 비정규직을 해고시키고 새로 채용하든지, 다른 사람을 채용하여 급여를 깍고
퇴직금을 줄이는 것이다. 또한, 의료보험 등을 자녀 앞으로나 지역의료보험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이외에도 한이 없다. 최근의 홍익대 사태로 알려진 청소부들의 집단해고는 이미 사회
전반에 일반화 되었으며, 힘없는 비정규직들은 저가 낙찰업체의 무서운 쓰나미같은 공세에
해마다 시달리는 것이다.
반면 ‘위너’들은 어떤가? 외교통상부는 물론 지방정부 등에는 매관매직이 전반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청문회에 나온 사람치고 거의 대부분의 인사가 정보의 독식, 땅 투기 등
부정과 비리로서 재산을 형성했다. 정부는 그들의 입을 통해 ‘땅투기 근절’을 외쳤다.
그들은 세금을 탈루하기 일쑤고, 자녀들은 국적마저 애매모호하다. 양극화의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그 와중에서 국가의 빚은 대규모로 늘었다. 그들이 ‘루저’들의 고통과
무관한가? 그들은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안중(眼中)에 없기 때문이다.
‘안보면 잊혀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은 경제 제일주의를 앞세운 정부의 도덕적 불감증의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의 불특정 다수인 ‘루저’들은 전가의 희생자들이다. 많은 개발론자들은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누구의 희생아래?”란 질문이
빠졌다. 이 정부 아래서 ‘루저’가 된다는 것은 다시는 그들에게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멀리서는 점점 폭포소리가 가까워지고 강변에서는 ‘파이 경계병’이
사다리를 치우고 막대기로 자꾸 '루저'를 강 가운데로 밀어 낸다. 아직 파이가 커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파이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 시점에서 ‘G20정상회의’로 의기양양해진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나? 그 방향과 끝을 알고 있는가? ‘세계 정의의 주도자’가 되는 게 목표인가?
그럼에도 왜 ‘그린 피스’ 등 ‘NGO' 들은 세계화에 그렇게 반대할까? 세계 제1의 ’자살율‘과
’노령화‘ 등은 누가 책임질 건가?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구제역은 온 나라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으며, 조류독감(AI)과 더불어 이제는 국가
재난선포만 남았을 뿐이다. 우리가 정의의 기치(旗幟)아래 이룩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탐욕과 교만이 빗어 낸 ‘바벨탑’이 아닐까? ‘Slow City', 'Slow Food' 등을 주장하면
안 되나?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