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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인생

쥬띠 2017. 7. 4. 14:48

[ 슬픈 인생 ]

 

형사가 찾아왔다. 그는 입주자 차량의 최종 출차 날짜에 대한 CCTV 검색을 협조요청 했고, 입주자의 방을 수색했다. 그 입주자는 관리비와 월 임대료가 4개월째 밀려있었고, 최근에는 연락이 두절되어 임대인에 의해 법적조치가 들어간 상태였다.

나중에야 형사는 자기가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입주자가 타던 제네시스 차량이 야외에서 발견되었고, 그 차안에 입주자가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죽으면서 유서를 남겼는데 자기가 사는 집의 비밀번호와 여자 친구에게 자기가 키우던 개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연락두절로 우리가 그의 집에 수도를 단수시켰는데 그 사이 가끔 와서 개를 돌보와 왔었나 보다.

외동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팔십의 아버지는 춘천에서 전철로 출발했다 했지만 결국은 오지 않았다. 삼촌인가는 보증금이 약간 남아있어서 집 안에 있는 여러 물건을 치워달라고 했고 개는 여자 친구가 미리 와서 데려갔다고 했다.

차량등록증 사본에는 차량 가액이 오천만원 가까이 된다고 기재되어 있었고, 캐피탈과 몇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어찌됐든 지금은 모든 것이 조용하다. 경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관리비 문제로 몇 번 통화를 했었기에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상태에 빠져봤으니,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러 지인들도 알고 있으니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는 그때 이후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절망의 순간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하는 순간 희망의 문은 하나 둘 닫히고 사방이 절망의 철문으로 꽉 막히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미로를 헤매게 되는 것이다.

경리 얘기로는 그가 잘 나가는 대기업을 다녔고 홀로 독립해서 개인 사업을 차렸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제네시스를 끌고 다니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니 안타깝다. 그가 연락을 끊고 피하는 순간 관리실, 임대인, 캐피탈 등이 변경에 북을 치면서 다가오고,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 소리는 그의 의지를 꺾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비의 시대는 사라졌다. 루저가 되면 장마철 소나기처럼 삶의 가혹한 무게에 흠뻑 젖는 수밖에 없다. 위너들의 민낯을 얼마 전까지 보아왔지 않은가? 우리는 이제 자비와 부끄럼의 상실시대에 살고있는 것이다. 세상은 먹을 게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위너들이 의미도 없는 돈을 쌓아 놓고 악을 실천할 뿐이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적 질서에 루저가 된 개인은 쓰러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