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빚- 영원한 이방인-3 ]
까뮈는 ‘우리 사회에서,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위험이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러한 무의미의 놀이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 순간 이방인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빛과 빚은 점 하나 차이지만 그 차이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크다. 카드 대금 연체나 핸드 폰 연체 등으로 저신용자가 되면 이제 그 사람은 나락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1,2 금융권에서 쫓겨나고 결국 고금리 대부업체에 의존하게 된다.
지난 5월말 기준으로 8~10등급의 저신용자는 3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부의 금융대책은 거의 전무하다. 그들이 보는 빚진 자들은 신의 버림을 받고 무거운 돌을 산꼭대기로 올리는 시지프스들이다. 정부는 신의 영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금융 관련 공무원들이 결과적으로 대부업체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공무원들 중에서 빚에 대한 조그마한 철학이라도 가진 자가 있을까? 구제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빚진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빚진 자들은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열심히 채권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취직을 부탁하고 공짜밥을 얻어먹는다. 그러다 겨우 하는 소리는 '그만 때려라. 많이 먹었다 아니가? 그러다 애 죽겠다.' 정도다.
빚진 자들은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산 정상으로 올리고, 굴러 떨어지면 또 올리는 시지프스들이다. 그들의 노역으로 1금융권, 이어서 2금융권이 먼저 뜯어먹고 종국에는 손에 피를 묻히는 대부업체까지 먹고 산다. 그들은 바다의 상어 떼요. 밀림의 하이에나들이다.
언젠가 강남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갚을 기한이 지나고 나서 그들이 찾아왔다. 소위 말하는 조폭들 말이다. 구구절절 생략하고 대부업체 사장의 형이 공무원 친구였다. 그 친구는 즉석에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는 운과 우연도 있었나보다.
내가 당한 숱한 시지프스의 고행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나는 지금도 헤매고 있다. 어제 빨간 딱지를 떼어내기 위하여 송금을 했는데 어쩌면 더 많은 딱지를 불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비롯하여, 불한당 등 온갖 영화들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이 영화를 앞지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무의미한 시스템들이 토해내는 규정에 따르지 않는 자가 아닌가! 그리하여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바위를 끌어올리는 시지프스를 세상 사람들은 그의 고통 자체를 보며 조소를 날린다.
하지만 까뮈는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정한다. ‘정상을 향한 투쟁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The struggle itself toward the heights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는 것이다.
빚에서 빛으로 나오기 위하여 참 많이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 뒤돌아보면 까마득한데, 그리고 빚의 터널 저 끝에 희미한 빛이 이제 보이는데, 이제 그들처럼 눈물만 흘리면 되는데…….
빚 이야기는 그만하자. 내가 어떤 소리를 하든 세상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가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