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노인-13(이제 잊으세요)]
어제 나는 오피스텔 노인을 차 한잔하자며 관리사무실로 불렀다.
노인은 식사 중이었고 식사를 마치고 오셨다.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란 나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시며 물 한 잔을 달라신다.
병원에서 혈당수치가 높아져서 커피를 삼가라고 했단다.
나는 편지봉투에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글을 쓰고 돈 10만원을 넣어드렸다.
“아구, 아구, 이러지마! 연기를 못해서 부끄러워. 돈은 받을 수 없어.”라고 말하시며 극구 사양하신다.
나는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드렸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아마 노인은 유용하게 쓰실 것이다. 어쩌면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실지 모르겠다.
경리가 미화원들이 아침에 보내준 송편을 꺼내 접시에 담아드렸다.
노인이 송편을 드시며 ‘이제야 추석 치루네.’라고 말하신다. 같이 먹자고 말해 우리는 이미 먹었다고 하자 송편 한 접시를 다 비우셨다. ‘점심은 제대로 드셨을까……’
노인은 긴 추석연휴를 홀로 오피스텔에서 지내신거다.
다 드신 후에, 여러 번 들었던 얘기를 다시 펼치신다.
“아들이 죽기 일주일 전에 나를 찾아왔어. 멸치처럼 말라가지고서는 ‘아버지 제가 죽어도 아버지 용돈은 꼭 챙겨드리라고 말할게요.’라고 했는데 며느리가 ‘저는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고요. 제 통장에 잔고가 한 푼도 없어요.’라고 말하더라니까……. … 딸이 아파, 오래 못 살 거야. 걔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나라 최초로 심장판막증 수술을 했어, 한국일보에 대서특필되었지…, 벌써 4번 째 수술을 했어,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데…….”
노인은 그 후에도 며느리가 자기에게 한 일들을 말하며 얼굴을 붉히셨다.
“할아버지, 이제 며느님 사이에 지난 일들은 다 잊으세요. 결국은 할아버님 마음만 아프세요. 저도 예전에 친구와 동업했다가 쫄딱 망해서 도망간 친구를 원망했는데 잊기로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을 미워하던 그때가 지옥이었어요. 이제 할아버지를 위해서 잊으세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리고 노령연금을 못 탄다고 푸념을 하신다.
아들은 죽고, 딸은 병들고, 자신은 수입이 없는데 아들딸의 재산이 있어서 노령연금 수급이 안 된단다.
나는 노인이 가시고 난 뒤에 가끔 세입자 조사를 위해 오시는 여자 통장님을 불러서 노인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안 돼도 괜찮으니 한 번 알아봐 주세요.”란 나의 말에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단다.
노인이 사시는 오피스텔은 아들의 집이고 현재는 며느리 소유라 월세는 없고 관리비만 노인이 내신다. 착한 동생분이 매달 30만원을 보내주고 그걸로 관리비 10여만 원을 내신다.
‘안 돼도 괜찮으니’란 나의 말은 오피스텔 노인보다 더 열악한 노인이 많으실 거란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노령연금의 수급을 떠나서, 오피스텔 노인이 이제는 며느리의 일을 잊고 현재를 즐기며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