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1. 제목의 의미
○ 틀뢴 :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혹성의 이름
○ 우크바르 : ‘가장 위대한’의 의미를 지닌 상상 속의 지역
○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 제3의 궤도(orbit)로 지구를 의미
2. 요약
○ 1부
- 어느날 밤 ‘비오이 까사레스’가 식사를 같이 하는 중에 ‘우크바르’의 한 이교도 창시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 수를 증식시키기 때문에 가증스러 운 것’이라고 말하며, 그 출처는 [영미백과사전]의 ‘우크바르’
항목에 그 말이 적혀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별장에 비치되어 있는 그 백과사 전에는 ‘우크바르’라는
단어는 없었다.
- 다음 날 비오이 까사레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그 백과사전 46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바르’ 이야기는 없지만 그의 교리에 관한 언급은 있다는 것이었다.
- 백과사전의 그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는 것이다. <그노시스 교도들 중의 하나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나의 환영이거나, 또는 궤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거울과 부성(父性)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가 그 책을 가지고 왔고 알파벳 순서는 Tor부터 Ups까지 되어 있었다. ‘우크바르’의
국경선은 매우 뚜렸해 보였지만 그 외는 매우 불분명했다. 다만 ‘우크바르’의 문학이 환상적이고, 그들의
설화와 서사시는 결코 현실이 아닌 ‘믈레흐나스’와 ‘틀뢴’이라는 두 환상적 지역만을 언급하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 2부
- 아버지의 친구인 ‘허버트 애쉬’는 1937년 9월에 죽었는데, 죽기 며칠 전 그는 영국에서 대형 8절판
크기의 책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그 책을 어느 주점에 놓고 갔고 훗날 내가 그 주점에서 그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책에 ‘틀뢴, 우크바르, 그리고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책은 영어로 씌어 있었고 1001 페이지에 달했다.
- 나는 <틀뢴의 제1백과사전 제11권 Hlaer에서 Jangr까지>란 글자가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란 말과
함께 푸른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제 나는 그곳의 전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방대한 자료의
일부를 바로 내 손안에 들고 있게 된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은 눈에 띄는 교조적 의도나 패러디적
어조가 없이 일목요연하고 통일성이 있었다.
- 그러나 그 이상의 자료를 구하지 못하자 ‘알폰소 레에스’는 그러지 말고 우리가 직접 수없이 많고 두께가
두꺼운 그 나머지 책들을 채워 넣자고 제안한다. 이런 모험적인 착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게끔 만든다.
- 시초에 ‘틀뢴’은 단지 하나의 혼돈, 상상력에 의한 무책임한 뜬구름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질서(코스모스)이고 비록 잠정 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움직이고 있는 법칙들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 이 혹성(틀뢴)에 있는 나라들은 본질적으로 관념적이다. 그들에게 있어 세계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체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세계는 독립적 행위들의 이질적 연속이다. 그것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 공간적인 게 아니다.
- 그들의 언어는 명사가 아니라 부사 형용사..... 틀뢴의 철학자들은 진리, 심지어는 그럴듯한 진실성조차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놀라움을 찾는다. 그들은 형이상학을 환상문학의 한 지류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체계란 어떠한 관점에 온 우주의 모든 관점들을 종속시키는 오류에 다름
아니다.
- 형이상학은 시간을 전체로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기억도 불완전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전체를 파악하려면 전체 속에서 나와야 한다. 존재와 존재자/ 시간 속에서는
전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3. 나의 생각
○ 알기쉬운 예
- 틀뢴에서의 재판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합산해서 400년형이 구형되기도 한다. 그러다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명사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유동적이다. 진실이 햇빛에 쏘이거나 달빛에
어리는 순간 그 진실은 이미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잘근 잘근 찔러버리다.’가 잠시 뒤에
‘노르죽죽하게 죽어버리다’로 변해버릴 경우에 구형과 선고는 엄청난 편차를 보인다.
- 그래서 재판은 주로 햇빛이나 달빛이 스며들 수 없는 밀페된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틀뢴
사람들은 그 재판을 변덕재판 또는 밀실재판이라고도 부른다. '틀뢴'의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놀라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들은 밀실에서 대립하는 상상을 허공에 계속 띄우고, 판사는 그
상상들의 가장 놀라운 한 순간을 포착해서 판결을 내린다.
○ 틀뢴의 이남사람들은 동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역동적이지만 늘 움직이기 때문에 피곤하고 단조로운
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이북 사람들은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한 풍부한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훨씬
다채롭고 문학적이다.
○ 어떤 사람들이 ‘틀뢴’을 만들었을까?
- 이 경이로운 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들, 대수학자들, 엔지니어들,
형이상학자들, 시인들....로 구성된 비밀집단에 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 일설에 의하면 ‘틀뢴’은 하나가 아니며 도처에 존재한다고 한다. 그것은 지하의 혁명조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 속의 관념이며 실체 없는 조직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틀뢴' 운운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한다.
○ 나는 틀뢴의 창조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것을 건설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그 비밀집단은 처음에는
한 마음이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각각 다르며 도저히 서로 합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스어로 유토피아는 <그런 곳은 없다>라는 뜻이다.
- 그래서 일부는 틀뢴의 건설을 포기하고 일부는 떠나서 다른 곳에 새로운 틀뢴의 건설을 시도했다.
- 그들의 한 분파인 예술가들은 떠나지 않고 현실의 지상에 남아서 자기들 이 꿈꾸는 유토피아인 틀뢴의
세계를 그 자리에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래하고 쓰고 그렸다. 세한도를 그리고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 나는 드디어 보르헤스란 커다란 산맥의 험준한 골짜기에 들어섰다. 그러다 갑자기 맨붕상태에 빠진 것이다. 입에서
욕지기가 나오려 한다. 솔직한 심정이다. 잠시 생각을 보류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좀 더 인내를 가지고 침착하게
보르헤스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