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르 ]
1. ‘자이르’의 의미에 대하여
○ ‘자이르(Zahir)’는 아랍어로 <저명한>, <가시적인>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느님이
가진 99개 이름들 중의 하나이다.
○ 이슬람권 사람들은 <결코 망각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본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어떤 존재, 또는 사물을 뜻하는 무엇>으로 사용한다.
○ 다만 <무한히 자비로운 하느님>은 두 가지 사물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허용치 않는다.(동전의 앞뒷면을
동시에 볼 수 없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이르’는 평범한 동전의 하나이다. ‘자바’에서는 신도들이 돌로 쳐서 형벌을
가했던 어느 회교사원의 한 장님이다. 페르시아에 서는 바다 밑에 던져버린 천체 관측기였다. 어느
감옥에서는 나침반이었다. ‘꼬르도바’의 회당에서는 1,200개 기둥 중의 하나에 나있는 대리석의
결이다. ‘브흐’ 근교에서는 한 마술적인 호랑이를 가리킨다고 한다. 자이르는 장미의 그림자이며, 베일에
찢겨진 틈바구니이다.
- 결국 '자이르(Zaheer)'의 성질을 갖지 않는 피조물은 없다고 한다.
2. 내용 요약
○ 오늘은 11월 3일이고, 6월 7일 새벽에 ‘자이르’가 내 손에 들어왔다.
○ 6월 6일, ‘떼오델리나 비야르’는 남부구역에서 죽었다. 그녀는 아름다움보다는 완전무결함에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완벽함이었다. 그녀의 일생은 모범적이었지만 내적 절망은 그녀를 끝없이
갉아먹었다.
- 상가에서 밤샘을 하는 동안 시체의 부패 진척도가 빨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옛날로 되돌려
놓았다. 그래서 비야르는 한순간에 20년전의 자신으로 되돌아 갔다.
○ 6월 7일, 내가 상가에서 나왔을 때는 이튿날 새벽 2시경, 구멍가게에서 오렌지 술을 마시고 거스름 돈으로
‘자이르’를 받았다.
- 나는 숱한 은화들을 생각하며 밤새 거리를 걸어 다녔으나 그 구멍가게에서 겨우 한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그 주화에 대해 숱한 생각을 했다.
○ 다음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가다 우르게사에서 내리고 걸어다녔다. 그리고 거리 모퉁이의 싸구려 식당에서
술 한 잔을 주문하고 ‘자이르’로 계산을 했다.
○ 6월말까지 환상적인 단편 한 편을 쓰는 작업을 했다. 나는 이런 작업을 하느라 주화에 대해 잊어버리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 7월 16일, 나는 1파운드짜리 영국주화를 손에 넣게 되었으며 그것에 집중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주화에 대한 나의 망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8월이 되어 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불면이 나를 고문하고, 이런 저런 문제의 영상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그리고 조금 후에 거리의 한 책방에서 [자이르에 얽힌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찾아냈다.
그 책에는 나의 병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 시간이 기억을 흐리게 한다고들 하지만 자이르에 대한 기억만은 오히려 더 뚜렸해지고 증대된다. 나는
처음에는 자이르의 앞면만을 떠올리다 나중에는 동전의 뒷면까지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이르의
양면을 동시에 본다.
○ 이제 나는 자이르를 보았던 ‘비야르’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훌리따’와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죽어갈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더 이상 우주를 감지할 수 없게 되리라, 대신 나는 자이르를 감지하게 되리라.
3. 작품의 의미
○ 화자는 6월7일 '자이르‘를 얻게 된 후 11월 3일까지 그것에 사로잡혀 불면의 날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미
그는 자이르를 보았기 때문에 이전의 그가 아니다.
○ 온갖 피조물이 다 자이르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떼오돌리나 비야르’는 완벽 함이라는 자이르를 보았고,
끝없이 일시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다 결국 죽었고, 그녀의 여동생 아바스깔(훌리따) 여사도 동전의 공포로
불면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갇혔다.
4. 나의 생각
○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신, 우상, 이상향, 여인(음부), 경마, 도박 등이 있다. 그러다 ‘자이르’에 빠지면
그 도가 지나쳐 광신, 상사병, 중독, 환각, 오르가즘, 열반으로 이르기도 한다. 그리되면 그는 이전의 그를
넘어 피안(파국)을 향하여 떠나게 된다. 자이르를 본 사람은 결코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내의 불륜을
본 남편이 보기 전의 상태에 머무를 수가 있을까?
○ 자이르는 양면이 있는데 처음에는 앞면을 보게 되지만 심해지면 뒷면을 보고 급기야는 양면을 동시에 보게
되는데, 이는 자이르 '이전의 그'와 '이후의 그'가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정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환상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마치 마녀의 예언을 들은 ‘멕베스’처럼……
○ ‘랭보’의 견자(見者)의 개념 : ‘지옥에서의 한 철’을 쓰고 더 이상의 창작을 마다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던
‘랭보’도 자이르를 본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견자의 편지’ 에서 견자가 되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