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오만하게도 역사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다. 역사소설은 이미 어느 정도 소재와 플롯이 짜여저 있으므로 작가의 창의성이 약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세계 명작들이 역사에 기대어 있는 것을 알고나서 나의 편견에 불과했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을>
나는 '나혜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쓰고싶다.
나혜석은 화가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류화가이고, 최초의 개인 전시회를 열었을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엄두도 못낼 '나부'라는 누드화를 그려서 발표했다.
그리고 작가로서는 1917년에 '여자계'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거기에 소설을 연재했다고는 하나 찿을 길이 없다. 찾는다면 이광수의 무정을 앞지를듯 - 1918년에 소설 '경희'를 비롯 많은 시와 산문들을 잡지와 신문에 발표하고 희곡으로 '파리의 그 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의 유명 화가, 문인들과 대등하게 교류했으며, 동경유학과 파리에서의 화가수업을 통해 그 당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선각자였다. 문인으로서는 수천년 이어진 인습을 타파하자는 '패미니즘'을 부르짖었지만, 전 세계를 일주하는 중에 '최린'과의 불륜이 신문에 발표되어 파국에 이른다.
<왜>
나혜석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인이 있을까?
당시의 모든 신문과 잡지에 최고의 인기가 있었던 여인! 그녀는 당시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실험결혼, 이혼고백서, 정조보상청구 등을 부르짖다 집안창피하다며 시집과 친정에서 버림받은 여인!
네 자녀의 어미로서 남편은 물론 자식도 만나지 못하는 한 많은 삶을 산 여인이었고 조선의 여성을 위하여 몸부림친 여인이었다.
3.1운동으로 투옥되고 창씨개명을 단호히 거부한 여자, 하지만 가난과 질병으로 길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 여자.
나는 '나혜석'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믿는다. 최소한 그녀의 작품과 페미니즘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몰랐다면 몰라도 안 이상 나는 빚을 졌다. 나는 그녀의 영욕의 삶을 써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하고 싶다.
<어떻게 쓸 것인가?>
얼마 전 나는 '나혜석'에 관한 연극 세 편을 보게 되었다. 극단 '성'이 공연한 '파리의 그 여자'와 '경희' 그리고 성남 아트센타에서 본 '화가 나혜석'이다.
그 중 '경희'라는 연극은 '나혜석'의 소설을 내가 각색해서 올렸다. 세 편의 연극은 다 나혜석의 일면을 다루고 있다. 나는 전체적인 나혜석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화단은 물론 문단에서 마저 작품을 떠나 돌을 던진 이유를 파헤쳐 보려고 한다.
지난 달 어느 일요일,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을 보러 덕수궁에 갔었는데 '나혜석'의 그림이 한 점도 걸려있지 않았을 때 슬픔을 넘어 아픔을 느꼈다. 아, 무슨 말을 하리오. 미술사적으로도 그림의 품격으로도 그림 한 점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그녀는 문학사적으로도 휼륭했다. 나혜석과 동 시대를 살았던 다른 문인과 나혜석의 글을 비교하면, 다른 글들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대중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 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나혜석의 글들은 대중 안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공감하는 글이라는 당시의 평도 있다.
<에필로그>
다음은 내가 각색했던 '경희'란 연극의 후기이다. 참고로 소개한다.
연극이 끝났다. 지난 달인 4월 26일과 27일 양일 간 나헤석의 소설 경희를 각색한 연극이 많은 관객의 호응 속에 무사히 끝났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당초 '수원청소년문화회관'에서 시민극장 '소극장'으로 장소가 변경되어 올려진 공연이었고 아무런 홍보도 없는 공연이었지만, 이틀 공연 동안 많은 관객이 찾아 와 자리를 가득 채워주었다.
세월호 침몰 희생자에 대한 애도 및 가족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표한 후 , 공연은 다듬이돌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인두를 이용한 빨래와 바느질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중간에 일본 감독과 떡장수 장면은 폭소를 자아냈지만, 모기장 속의 부부간의 열띤 대화와 경희의 절규로 끝나는 장면 내내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관람했다.
아! 이렇게 좋은 한국적 공연이 해외에 소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족한 각색자의 작품을 휼륭한 연출로 탄생시켜주신 김성렬 대표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한다. 그 분의 연출이 없었다면 감히 공연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면서 훗날 이 작품을 더 다듬어서 휼륭한 공연으로 다시 피어낼 꿈을 꿈꾸어 본다
<평>
문장력이 뛰어나네요. 목표가 있어 절실히 주제를 장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뿐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욕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와 나혜석의 파란만장한 삶은 분명 좋은 글감일 것입니다. 각색도 한 경험으로, 극적인 요소 십분 살려 쓰신다면 좋은 작품 되겠네요. 각색자들 나름대로 각색해 영원히 무대에 올리고 영상화도 될 수 있는 좋은 원전 소설 한 편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