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내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가?>
늦은 나이에 글쓰기에 빠져 문창과에 들어가고 첫 소설을 쓰고 자기가 쓴 소설에 도취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합평을 받고 급기야 신춘에도 내보고 이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닫는다.
언젠가 서대문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러시안 소설>이란 영화를 보았다. 내용은 한 청년이 문학에 빠져 문창과에 들어가고, 자기가 쓴 러시안 소설처럼 길고 지루한 소설에 도취되어 만나는 친구마다 소설내용을 떠들고 문창과 교수인 친구아버지에게 보이려고 하고 친구가 말리고…….
최근에는 영화에 빠져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고 품앗이로 배우를 하다 드디어 이번에 시나리오 상을 받았다. 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일이고 시간이 흐르니 찻잔 속의 태풍처럼 허전하다.
허전한 마음에 카뮈의 스승이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을 읽었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수의를 밀어 붙이며 나사로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수의란 다름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 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 얼마나 위안이 되는 글인가? 어린 아이처럼 내 글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어쩌면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의 일부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뽐내는 일이 정녕 부끄러운 일인가? 아닐 것이다. 무대 위의 가수가 배우가 겸손을 떠는 일이야 말로 웃기는 일이다. 시인이 소설가가 글을 뽐내고 화가가 그림을 뽐내는 일이야말로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이란 자신의 베스트를 뽐내는 것이 아닌가? 뽐내는 대상이 독자일 수도 관객일 수도 있겠고, 신이나 자기 자신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를, 또는 무엇을 향해 나의 진수를 뽐내는 일이야 말로 하등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제 뽐내자. 나의 수상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자. 이제 나의 배내옷을 벗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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