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밋빛 인생- 나혜석과 에디뜨 피아프

쥬띠 2016. 2. 10. 20:02

[ 장밋빛 인생- 나혜석과 에디뜨 피아프 ]

정월 나혜석을 생각하는 동안 에디뜨 피아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혜석의 그림을 떠올리는 동안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가 귓전에 울렸다.

나혜석이 장밋빛 인생의 정점에서 파리로 온 때가 1927년 가을이고, 에디뜨 피아프는 그때 12살의 어린 나이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장밋빛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나혜석은 첫사랑을 만나 사랑을 피우기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랑대신 평생 자유를 꿈꿨지만, 에디뜨 피아프는 늦게야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평생 사랑을 꿈꿨다. 사랑하는 사람 최승구를 결핵으로 잃은 나혜석, 사랑하는 사람 권투선수 마르텔을 비행기 추락으로 잃은 에디트 삐아프, 둘은 한 때 발광상태에 이른다.

  

나혜석은 파리를 떠나면서 더 이상 사랑을 얻을 수 없을 거란 예감을 자신의 자화상에 녹여냈다. 짙은 눈망울 속에는 뭔가 초점이 흐려지고 오똑한 콧날 아래 꼭 다문 입술에는 감출 수 없는 우수가 어려 있다.

에디트 삐아프는 파리로 돌아와 장밋빛 인생을 거친 후에 <아니,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란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녹여냈다. 어린 날의 영양실조, 교통사고 등으로 왜소해지고 찌들은 몸은 나이 쉰도 되기 전에 망가졌지만 “대가는 치러졌고 다 지난 일이니까 후회하지 않아”라고 노래하며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길거리를 전전하던 자신의 지난날을 용서하고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사랑했다.

  

이제 그들은 모두 갔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과 노래는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쉬운 점은 에디트 피아프의 지옥 같은 어린 날과 그에 비하면 나혜석의 천국 같은 어린 날의 대비 탓인지, 에디뜨 피아프는 가난으로 문란한 성, 술, 약물 등 무절제한 삶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재기하고 지금도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반면, 나혜석은 단 한 번의 실수로 그의 모든 것이 암흑 속에 처박혔다는 것이 아쉽다.

  

우리의 도덕 기준으로는 에디뜨 피아프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지만 파리의 기준은 달랐다. 그리고 우리의 1세대 서양화가들이 나혜석만큼 서양화가의 길을 오롯이 걷지 않았지만, 훗날 예술원회원도 되고, 나름 명성도 얻고 나중에는 감투와 훈장 등을 받았지만 나혜석은 그런 것은 물론 <한국 근대회화 100년 전>에도 교과서의 숱한 그림 속에도 끼지 못했다. 당시 <선전>에 10여 차례 입선과 특선을 했음에도 말이다. 첩을 끼고 살던 당시 남자들의 도덕기준은 물론 지금의 남자들의 도덕기준은 예술도 사랑도 자유도 초월한다. 그 기준은 위선으로 가득 찌든 국내용이다.

  

나혜석은 사랑을 잃고 자유와 예술을 원했다. 하지만 편협한 조선의 남자와 여자들은 그녀를 욕하고 저주했다. 그래서 나혜석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자! 파리로.

살러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4남매의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에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나는 그녀에 대한 <오마주>로 이렇게 노래했다.

       

아아!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 파리가 그리워…….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순진무구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잠든 조선, 무지한 조선아, 나를 놓아다오.        

저 하늘로 올라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그러나 이제 나는 날개가 없네.       

한 때는 나 부잣집 딸로,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로, 한껏 날아올랐지. 

종달새처럼……. 종달! 종달!       

나는 이제 한낱 행려병자로 병든 몸이 되어 쓰러지지만        

나의 뼈 한 줌만이라도 파리에 뿌려다오.       

나의 아카데미, 몽마르트, 오르쎄, 루브르……. 어느 곳에라도.       

그 모습을, 그 공기를, 뼛가루가 되어서라도 보고 호흡하고 싶다.       

이제 죽으면 넋으로라도 불새가 되리.       

파리의 하늘로 훨훨 올라가 마음껏 마음껏 그림을 그리리…….        

명예도 부귀영화도 뜬 구름일 뿐,        

나는 한 마리 불새가 되어 창공을 거침없이 날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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