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제 곧 종려주일이 오고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1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하는데요. 학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한 주(The longest week in the world)라고 말합니다.
처음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은 한 주일도 못가서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성경에 보면 고난주간에는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고 고난주간을 영화로 제작한 것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고난주간에만 등장하고 사라진 인물, 그래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 <바라바>란 인물입니다. 예수와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고 예수 대신 살아난 인물 <바라바>! 그는 예수사역의 커다란 계획 속에 마지막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스웨덴의 <페르 라게르크비스트>란 작가는 1951년도에 “바라바”란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1962년도에는 그 소설이 <앤소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 졌지요.
저도 미완이지만 <바라바>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그 일부를 올려 봅니다.
『둔탁한 망치 소리가 해골산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병사들이 두 발을 모아 놓고 커다란 망치로 마지막 대 못을 힘껏 내리쳤을 때 그 망치 소리는 그곳에 모인 여인네들과 구경꾼들의 가슴을 울리고 성벽을 넘어가 그들을 재판했던 빌라도와 헤롯과 산헤드린 공회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가슴을 때렸다.
멀리서 예수를 바라보던 바라바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그를 버리시나이까? 나는 벌레만도 못한데 왜 저를 살리셨습니까? 그의 신음소리가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리는데 나의 하나님이여 왜 그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십니까?’ 바라바는 주저앉아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망치 소리가 성벽에 부딪쳐 메아리 쳤다. 병사들은 히히덕거리며 예수의 옷을 벗겨 서로 가지려고 다투었다. 드디어 십자가가 세워졌다. 갑자기 천둥 같은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예수를 못 박은 십자가가 잠시 흔들리다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세워지자 주위는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갑자기 적막해졌다. 바라바는 언덕 위에 우뚝 선 십자가 옆에 나이 든 여인과 다른 젊은 여인, 그리고 두 남자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누구일까? 아! 나는 왜 그들처럼 그의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가? 나는 왜 그에게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전하지 못하는가?’
*
바라바는 근처의 나무 곁에 숨어서 기다렸다.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의 주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남아있던 제자와 함께 예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뽑고 가시관을 벗겼다. 녹슨 세 개의 못과 가시관에는 피가 범벅이 되어 엉겨있었다. 조심스럽게 축 늘어진 예수의 주검을 내린 그들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의 시신을 넘겼다. 마리아는 예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팔에 안았다. 슬픔에 잠긴 마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내렸다. 요셉과 막달라 마리아도 소리를 죽여 눈물을 흘렸다.
바라바는 한 밤이 되자 다시 골고다 아래에 있는 무덤가로 갔다. 바라바는 무덤에서 멀리 떠나가지 않고 근처의 숲에서 이슬을 맞으며 밤을 세웠다. 유월절의 밝은 달이 바라바의 가슴을 파고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4월 초의 날씨는 밤이 깊어지자 쌀쌀해지고 추위가 바라바의 낡고 초라한 옷을 뚫고 살 속을 파고들었다. ‘떠날까? 왜 내가 여기에 꼭 있어야 하지?’ 유월절의 만월이 기울면서 날이 희미하게 새고 있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바는 외로움을 느꼈다. ‘살면서 외로움을 느낀 게 언제였던가! 그렇다 처음이다. 난생 처음이다!’ 바라바는 또 생각에 잠겼다. ‘지나온 삶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바라바에게는 지나간 자기의 삶이 마치 자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삶으로 생각되었다. 그의 뇌리에 지나간 자기의 삶, 재판정에서의 일이, 산속에서의 도둑 생활이,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삶이 끝난 곳에 새로운 삶이 예비 되어있다니?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온 30년 세월이라니? 그 세월 속의 내가 정말 나일까?’ 사방은 고요했다. 바라바는 십자가의 일을 떠올리며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여정을 생각했다. 감람나무 숲의 공터에 서서 허공에 뜬 유월절의 만월을 다시 쳐다봤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나뭇가지사이로 놀란 이슬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바라바는 허공에 펼친 손을 그대로 멈춘 채 달을 바라보았다. 마치 터질듯이 부풀어 오르는 보름달의 대답이라도 듣겠다는 듯이.
바라바는 추위도 잊은 채 생각에 빠졌다. ‘나를 살린 것은 누구인가?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그의 사주를 받은 사두개인들인가? 군중일까? 빌라도? 아니다. 나를 살린 건 예수다! 왜? 나를 살렸나? 내가 살려달라고 빌었는가? 그가 나와 무슨 상관이라 말인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라바는 허공을 향해 펼친 손에 힘을 주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자 몸이 따스해지며 천지가 밝아졌다. 그러자 밝은 빛을 뚫고 한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그는 예수야말로 자기를 이곳에 이르게 한 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 나를 선택하여 살렸을까? 바라바는 갑자기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자신의 모습과 함께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던 예수의 말이 떠올랐고, 이어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죽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사로가 살아서 산 증인이 되는 것은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들은 바라바를 불렀고 바라바는 그들의 청부에 응했다. 비열한 그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바라바를 살인죄로 체포하여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유월절 희생양으로 말이다. 예수는 사울처럼 예수 자신을 핍박하고 자신의 사역을 방해한 바라바를 살린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바라바는 펼쳤던 손을 거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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