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제2강 : 시나리오의 구성

쥬띠 2016. 4. 23. 05:22

[ 2: 시나리오의 구성 ]

 

1강에 이어 제2강은 시나리오의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에 이미 <시학>이라는 책을 통해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는 3장 구조로 되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 구조를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따르고 있죠. 거기에는 조그만 비밀이 숨어져 있습니다. 2천년 이상 3장 구조에 길들여진 관객은 낯 설은 구조를 원래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쓰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이므로 당연히 3장 구조를 가집니다. 3장 구조의 시작은 설정에 해당하고 중간은 갈등과 대립의 장이며 끝은 해결과 마무리의 장입니다.

 

다만 영화는 이러한 3장 구조를 따르되 거기에 추가하여 엄격한 시간배분의 원칙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의 시간배분은 1:2:1의 비율을 따릅니다. 가령 두 시간의 런닝타임을 가진 영화라면 30:60:30분의 시간배분을 하고, 100분의 영화는 25:50:25분의 시간 배분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시간(감독/편집)의 예술이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이제 시간 배분에 대해 몇 가지 예시를 들고자 합니다. 많은 성공한 영화가 이런 시간 배분을 엄격히 지킨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기도 하죠.

  

우선 제가 만든 영상을 상영회를 통해서 모두가 보았으므로 나의 작품 <나쁜 남자 평범한 여자>를 예로 들겠습니다. 저의 영화는 솔직히 촬영과 편집은 엉망이었습니다. 다만 편집할 때 시간배분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그것이 그나마 조금은 짜임새 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 영화의 런닝타임은 528초이고 이를 3장구조로 배분하면 82:164:82초가 됩니다. 제 영화의 1장은 나쁜 남자가 평범한 여자를 오래 만에 만나서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뻥치는 장면까지입니다. 2장은 여자가 남자의 선물을 거절하고 평범한 여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까지입니다. 3장은 여자가 뛰어가고 남자가 쫒아가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다음으로는 최근에 본 <베테랑>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체크해 보았는데 놀랍도록 1:2:1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테랑>의 런닝타임은 엔딩 크레딧을 빼면 두 시간인데, 1장에 해당하는 부분은 형사 서도철과 미스 봉이 외제 중고차를 뽑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30분이 되는 지점입니다. 극동화물의 화물차 운전기사인 배기사는 어느 날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해지됩니다. 그는 서도철 형사에게서 받은 명함을 보고 그에게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서도철 형사는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자기 전화에 등록이 안 된 전화번호라고 바쁘니까 이따 전화할게라고 말하며 받지 않고 룸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조태오란 선진물산기업의 기획실장을 만나 해괴한 술파티를 보고 약쟁이 냄새를 맡습니다. 여기까지가 1장이고 정확히 런닝타임이 30분이 됩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모든 설정이 끝난 것입니다. 시나리오로는 총 126페이지의 시나리오 중 1/4에 해당하는 34페이지가 됩니다.

이어서 경찰 체력단련장 씬으로 장면이 확 바뀌고, 선진물산의 화물차 노조의 계약해지 반대시위, 배기사에 대한 사무실에서의 구타와 추락사고로 사건은 급격한 흐름을 타게 됩니다. 어느 날 운전기사의 아들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도착한 서도철 형사는 배기사가 식물인간이 된 상태인데도 담당 수사경찰의 미온적인 태도에 의심을 가지고 수사에 개입하게 되고 자꾸 사건은 커집니다. 급기야 기획실장 조태오는 이복형인 최상무를 시켜 형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현장소장을 사주해 형사를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서도철 형사를 유인하지만 범행은 실패하고 체포에 참여했던 막내형사가 칼에 찔려 중태에 빠집니다. 경찰이 칼침을 맞자 화가 난 경찰총경이 수사 강화를 지시합니다. 배기사의 아내가 마지막 메일을 공개하고 119 신고시간 등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띱니다. 여기까지가 2장이고 시작부터 따지면 런닝타임이 90분이 되는 지점입니다. 시나리오로는 126페이중 3/4에 정확하게 해당되는 95페이지입니다.

이어서 씬은 그룹회장의 식사장면이 나오고, 조회장은 최상무에게 총대를 매 달라고 부탁하고 아들에게는 회외도피를 명령합니다. 도피 전, 마지막 환각파티를 벌이는 현장을 경찰이 덮치고 조태오는 고급차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결국 체포됨으로써 영화는 끝납니다.

 

다음은 구성점(Plot Point)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구성점은 이야기를 역동적인 힘으로 앞으로 진행시킵니다. 구성점은 뜀틀에서 구름 발판에 해당하고 활주로에서 이륙 직전 활주로의 튀어나온 부분에 해당한다고 보겠습니다. 구성점이란 사건과 같은 것으로 행동을 결정해서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방향이란 말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 아시다시피 시나리오는 컷이 모여서 씬이 되고 씬이 모여서 시퀀스가 됩니다. 여기서 씬은 같은 방향으로 가려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씬이 모인 씨퀀스의 중요한 부위에 구성점을 두어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만일 구성점이 없으면 옛날 옛적에 ~ 잘 먹고 잘 살았데란 평범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두 시간의 영화인 경우, 30:60:30분의 시간 배분이 이루어지며 1장의 첫 구성점은 25분에서 28분 정도에 있으며, 마지막 큰 구성점은 2장의 85분에서 89분 정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 8개에서 10개 정도의 작은 구성점들이 있습니다.

  

다시 예를 들겠습니다. <나쁜 남자 평범한 여자>에서 첫 구성점은 1장의 82초 중 75초가 되는 부분으로 남자가 나 여자가 생겼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방향을 바꿉니다. 여자는 할 말이 있었지만 말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 안겠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구성점은 2장의 164초 중 155초가 되는 부분으로 여자가 남자의 선물을 거절하고 나 이제 평범한 여자가 되는 꿈이 생겼어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제 여자는 남자를 떠나 뛰어갑니다.

  

<베테랑>에서 첫 구성점은 제1장의 25분에서 27분 정도의 지점입니다. 노조가입을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화물기사는 룸싸롱으로 들어가는 서도철 형사에게 전화를 겁니다. 낯선 전화번호라 받지 않고 서도철 형사는 룸싸롱에 들어가 조태오실장과 첫대면을 하게 되는 거지요. 만일 전화를 받았다면 이야기는 단순 사건으로 전개되고 사건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 순간,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죠.

두 번째 구성점은 2장의 60분 중 55분에서 58분사이의 지점입니다. 신진물산 상무의 사주를 받은 소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막내 수사관이 칼침을 맞자 화가 난 경찰서장이 수사를 강화하라고 지시합니다. 그와 동시에 화물기사의 아내가 메일을 보여주며 중요한 제보를 하면서 외부의 압력으로 주춤하던 수사는 활기를 띠고 급반전합니다.

런닝타임 90분인 2장이 끝나자 장면은 신진물산의 회장집의 식사장면으로 새롭게 변합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게 커진 사건을 보고 회장은 상무에게 장어구이를 얹어주며 총대를 메라고 지시하고 아들에게는 해외도피를 지시합니다. 아들 조태오는 마지막 환각파티를 벌리고 경찰이 그 장소를 덮치고 이어서 광란의 질주와 격투, 그리고 체포가 3장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을 2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간편한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작(ACT)

중간(ACT)

(ACT)

설정(1~30)

대립(31~90)

해결(91~120)

구성점(25~27)

구성점(85~90)

 

 

 

지금까지 이야기한 3장 구조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변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테랑이 아닌 초보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그것은 작가의 이야기가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방향을 잃었을 때 휼륭한 이정표가 되고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쓰듯이 시나리오를 써왔습니다. 이제는 저도 제가 써놓은 시나리오를 이러한 패러다임에 맞추어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고자합니다. 즉 시간을 1:2:1의 비율에 맞추고 전체를 시작 씨퀀스, 1구성점, 2 구성점, 그리고 끝이라는 4덩어리로 먼저 쓰고 그 외에 10여개의 시퀀스와 작은 구성점을 배치하고……. 제가 쓴 시나리오 <혜석>120페이지의 분량입니다. 그러니 저의 시나리오 25~ 27페이지에, 그리고 85~ 90페이지에 구성점을 넣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이미 검토 없이 서둘러 제출했습니다. 좀 아쉽습니다.

  

심산<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의 주요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간략히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는 베껴 쓰기가 훌륭한 시나리오 작법 연습이라고 말합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의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계속 베끼고 그 감독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라는 겁니다. 요령은 우선, 시간을 체크해 보라는 겁니다. 보통 영화 시작 후 25분 쯤에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음에는 씨퀀스에, 다음에는 그 안의 각 씬을 회상하면서 글로 옮겨보고, 영화를 다시보기(리뷰)하면서 확인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시나리오는 제작사, 감독, 배우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시나리오는 설득의 도구이므로 투자자와 제작자를 설득해야 하고 다음에 배우를 설득해야 합니다. 유명 배우 중에는 기피하는 장면, 배드 씬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고 설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창동 감독의 <>이라는 영화는 처음부터 배우 윤정희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시나리오는 쉽게 쓸 수가 없는 장르라는 겁니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시나리오가 영화화 될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얘기하는 겁니다. 시나리오의 작품성보다 상업성이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는 작품이자 견적서이기 때문에 흥행과 제작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현실을 말하는 거지요.

 

이상 저의 제2강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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