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정치적 현상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힘들었다. 오랜만에 마음을 추스를 겸 지난날에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며 격세지감에 빠졌다. 이제 3년이 되어가는 그 글을 일부 발췌해봤다.
노무현 대통령! 나는 노동판에서 늘 그를 생각해왔다. 언제나 내가 그를 찾아갔지만 때론 그가 날 찾아왔다. 돌아가신 날이 2009년 5월 23일이고 토요일로 기억된다. 그날도 인력사무실에서 송출되어 S전자 공장에서 전기작업 중에 그 소식을 들었었다. 10시쯤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한참이나 푸르렀던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았었다.
“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제 아무도 모르게 나의 가슴 한 켠이 무너지고 오랜 시간 가슴앓이를 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살면서 죽고 죽음을 삽니다. 시간은 약이지만 기다림은 너무도 씁니다. 사람냄새가 그리워 흙 한줌을 움켜쥡니다. 허물없고 꾸밈없는 삶이란 얼마나 힘겨운가요?”(중략)
봉하에 도착한 것이 정오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나는 봉하마을 입구에서 국화 한 송이를 이천 원을 주고 샀다. 묘역에서 헌화하고 참배를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상념들이 무작정 다가왔다가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당신께서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부관참시를 하고 주검에 치도곤을 가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의 적들은 당신이 예수처럼 부활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지요. 당신의 가르침처럼 동과 서가, 남과 북이 형제처럼 서로 화목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들은 오늘도 남북을 쪼개고 동서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부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그저 다 잊고 명부로 돌아가시겠다고요.’
발가벗겨지고 파헤쳐진 주검 위에……
이제 그만 가시라고 국화 꽃 한 송이 놓아드렸네.
명박스럽고 창중스런 세상에서
미련 없이 떠나가시라고.
방명록에 ‘외로워 마세요.’라고 써놓고는 미처 의미 있는 말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왜 그렇게 썼을까?’라고 부엉이 바위를 한참이나 올려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외롭구나. 그래 내가 지독히도 외로운 게지. 그래서 홀로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봉하를 떠나기 전에 소머리국밥 한 그릇에 봉하 막걸리 한 통을 마시고 봉하 찰보리 빵 한 봉지를 기념으로 샀다.
이제 노무현 그분을 보내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허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삶이리라. 좁은 가슴 속의 못을 뽑아내고 허허롭게 살자. 내가 봉하를 간 것도 그분을 자유롭게 보내는 내 나름의 의식(儀式)이었지 않은가? 이제 훌훌 털고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져본다. 앞으로 지독히도 외로울 거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루저가 문학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외로움을 벗 삼고 열심히 쓰는 거다. 가족은 이미 관심도 없고 세상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주에다 쓰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할 수 있는 것, 노래를 부르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저 허공을 넘어 우주에다 부르자. 저 넓고 아름다운 우주가 있는데 좁고 무심한 세상에 기댈 게 무언가? (이하 략)
나는 지금 앓고 있다. 글도 쓸 수가 없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고인을 욕보이고 부관참시를 한 세력들이 하나 둘 무너지고 있다. 내가 봉하마을에서 드린 국화 한송이와 대통령께 올린 말들이 지금에 해야 됐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노여움을 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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