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에 빠져서 즐거울 때도 있지만 나는 드디어 헤메기 시작했다. 일단 초벌작업만 하자고 했으나
어찌됐든 읽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써야하니까. 그런데 진흙탕이고 가시밭길 같다. 갈 길이 먼데도...
좌우지간 쓰고보자.
[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
1. 주제
○ 완전성에의 추구, 진리 찾기, 끝없는 여행으로서의 글쓰기.
2. 작품의 성격:
○ 탐정소설적 구조(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범인을 잡고 종결)와 신비주의의 속성
(범인과 형사가 동일인, 찾는 대상의 부재)이 혼재 됨.
○ 아직 사명이 남아있는 영혼의 자기완성
※ 16세기에 예루살렘의 신비주의 철학자 이삭 루리아는 한 조상, 또는 스승 의 영혼은
위로를 해주거나 영감을 주기위해 어떤 불행한 후대 사람들의 영혼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영혼환생의 한 양식을 <이부르>라고 한다.
3. 줄거리
○ 봄베이에 살고 있는 법과대학생이 무하람 달의 열 번째 달이 기울던 시각, 3 천명의
이슬람교도들과 힌두교도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의 소동 속에서 한 힌두교도인을 죽이고
(또는 죽였다고 생각하고) 도망친다.
○ 개들에게 쫒긴 법대생은 탑으로 도망쳤고 그 꼭대기에서 꼬챙이처럼 마른 한 남자와 맞부딪친다.
그 사람은 이 탑에 버리는 시체들에서 금니를 훔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녹초가 된 법대생이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있었고 자기의 소지품은 다 털리고
도둑은 사라졌다.
○ 그는 도둑이 증오한다고 말해주었던 여자도적을 찾기로 하고 방랑의 길을 떠 난다.(1장 끝)
○ 봄베이부터 빨란뿌르, 비카니르, 베나레스, 카트만두, 캘커타(기도와 간음), 마추아 바자르,
트라방코르, 인다푸르(살인) 그리고 봄베이 근처에서 방랑을 끝맺는다.
○ 그는 여행을 통해서, 그리고 비천한 사람과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죄과가 경감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자기와 대화하는 그 비천한 사람이 그러한 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는 어떤 자가
끼어든 것처럼 느꼈다.(영혼의 개입-이부르)
○ 그리고 하나의 신비스런 인식에 도달한다. <지구의 어떤 지점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로부터
깨달음이 유래한다. 지구의 어떤 지점에 이 깨달음 자체인 어떤 사람이 있다>고 느끼고 그를 찾는데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 그가 드디어 ‘알모따심’이라 불리는 사람을 찾고 그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설은 끝난다.
4. 작품의 의미
○ ‘알모따심’은 이처럼 부재하는 것, 또는 그 부재를 특정한 대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 화자는 법대생이 죽인(죽였다고 믿는) 회교도가 바로 알모따심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 고로 알모따심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 따라서 알모따심의 존재와 그것에 대한 추구는 대상의 부재와 추구과정의 무한함을 정식화하는
방식이다.
○ 출발점에 선 자는 이미 전능한(가능) 존재이다. 그래서 다른 전능한 존재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을 내포하고 있다.
○ 언어의 유희(저자, 초판, 재판, 제목, 부제)
- 저자인 ‘비하두르 알리’는 가공의 저자다. 실제 저자는 보르헤스다.
- 초판 : 1932년 봄베이에서 출판, 4쇄 매진.
- 재판 : 1934년 삽화본 영국에서 ‘빅토르 고얀사’ 출간.
. 제목; ‘알무타심이라 불리는 사람과의 대화’
. 부제; 변형되는 거울들과의 유희.
5. 나의 생각
○ 보르헤스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나에게는 고약한 늙은이라는 것이다. 온갖 각주, 허구
그리고 은유를 늘어놓아 당황스럽고 자칫 혼돈에 빠지 게 만든다.(작가가 누구고, 출판년도가 언제고,
무하람 달의 열 번째 달이 뜨 고 등등 - 그중에는 진실과 허구가 뒤범벅 되어있다.)
- 하지만 보르헤스에게는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무한한 독서로 체득한 자연스런 용어나 수사의
사용일 것이니까. 그리고 펜을 잡으면 무한정으로 터져 나오는 용어나 수사를 정리하는 일이 그의
문학이었을 테니 까.
○ 부재하는 진리는 창조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알모따심은 존재하는가? 깨달음의 뒤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무다. 가장 완전한 것은 없는 것, 내 스스로를 없애면 나의 고통도 괴로움도 없다.
○ 그러므로 과정이 의미가 있다. 그만큼 과정이 중요하다. 알모따심은 존재한다는 환상만으로 족하다.
그래야 추구하니까. 즉 그것은 부재하지만 다른 존재의 의미를 가능케 하는 부재이다.
○ 새들의 왕 ‘시무르그’를 찾아가는 30마리의 새가 ‘시무르그’가 되듯이, 큰바위 얼굴을 사모하는 ‘어니스트’란
소년이 큰바위 얼굴이 되듯이, 작가는 ‘알모따심’에 끝없이 다가가야 한다.
○ 휼륭한 작가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등단에 목메이고(심사위원의 비위를 맞추 고), 원고료를 껄떡거리고,
시류와 교제 그리고 비평에 흔들리면 안되지 않겠는가?
아휴! 숨차. 맞는 얘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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