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러분 내 얘기 좀 들어볼라요

쥬띠 2013. 12. 15. 05:26

 

<프롤로그>

나는 노자다. 가끔 내 신세가 슬퍼서 우는 ‘슬픈 노자’다. 술 퍼마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슬피노자" 혹은 "술피노자"라고도 부른다. 나는 꿈꾼다. 가난에의 탈출을, 그리고 내 인생의 업그레이드를 시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저냥 사는 것보다 삶이 고달프다. 그럴 때면 노래를 부른다. 하루의 일이 끝나고 석양이 사그라들 때면 노래가 가슴을 타고 오른다.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내 나는 슬픈 노래를 흥얼거린다.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아니지, 이건 아니야.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지랄!, 그러다 울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실랑이를 하다보면 집 앞이다. 좁고 더러운 집 앞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철거 예정인 아파트단지 근처에 마지막 남은 슈퍼마저 문을 닫고 있었다. ‘에이, 집주인들은 다 떠나가고 가난뱅이 세입자들만 남아서 장사가 안 돼, 진즉에 그만 두었어야 했는데…….’ 슈퍼주인은 이웃집 주민에게 툴툴거리며 물건을 정리했다. 비탈길 옆에 붉은 벽돌로 지은 교회의 벽에는 담쟁이가 말라붙어 있고,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란 노란 글씨만이 희미하게 양각되어 그곳이 교회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대문은 누군가가 약삭빠르게 한쪽을 떼어갔다.

많은 것이 떠나갔다. 그리고 구질구질한 많은 것이 남겨졌다. 그 중의 하나가 평생 갚아도 끝나지 않을 빚더미다. 내가 노동을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분. 내 신세한탄 한 번 들어 볼라요?”

 

 

2

 

정부는 미국의 잎담배 수입개방 압력에 농민들의 피해를 우려해 수입개방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해놓고선, 어느 날 수입을 개방하고 내가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공사로 만들었다. 새파랗게 젊은 공채출신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나름대로 꿈이 많았던 나는 공사로 갈 수 없다고 버팀으로써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보헤미안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공직이 내 생애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직장이라는 긍지는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아! 좀 더 사려가 깊었더라면, 명예대신 돈을 택하는 건데……’

왕고참이었던 나는 내가 택한 부처의 모든 과에서 받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어느 날 뜬금없이 가스총을 가슴에 품고 수갑을 허리에 찬 채 전국을 떠도는 짚시가 된 것이다. 사범단속! 나는 너무도 낯설고 적성이 맞지 않는 그 일이 싫었으나 타 부처에서 온 떠돌이가 처음부터 찬밥 따뜻한 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를 고참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로 쑤셔 박고 조용히 찌그러져 살라고 한 사람들이 원망스럽지만, 어쩌랴! 힘없는 인생이 다 그런 것을……’

그곳에서 나의 동료이며 베테랑인 M을 만났다. 삶에 치어 잊고 지냈던 M을 다시 만난 건 직장을 때려 치고 의왕의 능안마을에서 농장을 하던 때였다. 말이 농장이지 움막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느 날 신문의 1면에 M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아! 그때의 심정을 누가 아리요.’ 신문을 통해 그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사실을 알았다. ‘그가 바로 근처에 있다니!’ 그 구치소 앞을 지나다니면서 몇 번을 망설이다 면회를 갔었다.

“노자! 와줘서 정말 고마워, 곧 나가게 될 거야. 손을 쓰고 있으니까.” 그는 통풍으로 아픈 다리를 절룩이며 푸석한 얼굴로 다가와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당당하고 거대한 덩치와 혈색 좋던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그는 많이 초췌해 보였다.

M과 나는 전국을 무대로 출장을 다녔다. 그는 우리 부서의 회식비를 거의 책임졌으며 낮은 직급에도 과장은 물론 윗선의 상사들과도 친했다. 그와 나는 두 개조로 나뉘었으며, 나는 나보다 한두 살 위인 부하직원 한명을 데리고 처음으로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고, 그 길고도 길었던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출장을 떠나던 날 아침에 우리는 감사실에 들러 출장선서를 했다. 상사가 우리에게 선서문을 손에 들려줬다. 나는 대표가 되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꼿꼿이 선채 큰 소리로 선서문을 읽었다. 지금도 긴장되어 선서를 하던 앳된 내 모습이 아련하다.

“하나,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절대 차량접대를 받지 않겠습니다. 둘,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절대 식사접대를 받지 않겠습니다. 셋,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절대 향응을 받지 않겠습니다. 넷,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절대 금품을 받지 않겠습니다.” 얼굴까지 붉히며 진지하게 선서를 마치고 나올 때 상사는 씽긋하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출장지의 기차역에 내렸을 때 가로수가 좌우로 도열한 신작로를 가로질러 고급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사장인 듯한 나이 든 사내가 역사 앞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와 익숙한 손길로 명함을 내민다. 명함에는 협회의 회장이란 타이틀이 인쇄되어 있었다. ‘차에 타시죠.’하며 그가 말하자 젊은 기사가 재빨리 차문을 열어 주었다. 차는 번잡스러운 시내를 벗어나 어느 고급 식당 앞에서 멈춰 섰고, ‘이왕 식사시간인데 식사를 하고 가시죠.’하며 회장은 차에서 내렸다. 식사 후 회장의 안내로 여러 업체를 다니며 조사를 마친 후, 밤이 되어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서 향응을 받았다. 술집에는 낮에 조사를 받은 업체의 사장들이 모두 합석을 했다. 그들은 부하 직원과 안면이 있는지 분위기가 이내 화기애애해졌고, 출장 나온 밴드와 새끼 마담의 웃음 속에서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부하 직원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끝내자 ‘앵콜’소리가 이어졌고 그가 세 곡을 연달아 부를 때 선서를 받던 상사의 미소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현기증과 함께 구토를 느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했다.

업자들은 서울로 돌아오는 나에게 봉투를 모아 전달했다. 나는 당황했고 그 돈을 끝까지 거절했다. 돌아오는 내내 소태 씹은 얼굴의 부하직원은 텅 빈 기차 안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가와, 눈을 부라리며 갑자기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했다.

“야! 노자, 좋은 게 좋은 거 아녀? 니가 뭔데 그 돈을 거절해? 니가 그렇게 잘났어? 그게 다 니 돈이냐구? 나 이 자리에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손가락 빨기는 니가 처음이야. 재수 없으려니 좆같은 놈 만나서 고생하네, 씨벌! 그러다 뱃때기에 칼 맞아, 알아들어? 나? 빽도 든든해,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거야. 이 바닥이 다 그래, 알아? 너 같은 새끼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날릴 수 있어. 왜? 고용직이라고 우습게 보이냐? 한 번 해볼까?” 술에 떡이 된 그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악다구니를 쏟아놓더니 빈 좌석에 거대한 몸을 던지고는 다리를 뻗고 누워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새가슴이라고 한편으로는 비난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했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한 통속으로 잘 돌아가던 기계가 삐걱되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볼트나 너트가 되기에도 나의 머리나 가슴이 터무니없이 작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나는 그 때 제도개선안을 내어 우리의 일을 지자체에 이관시키자고 했다. 전국을 그렇게 소수의 인원이 맡기에는 벅차다고 했으나, M은 나를 넋 나간 놈 취급을 했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환멸감과 함께 가슴이 아려왔다. M은 출소 후 얼마 후에 죽었다고 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도 면회 갔을 때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묻지 않았었다.

 

 

 

“여러분! 할 말은 많지만, 구구절절 무슨 말을 더 하리요. 하지만 지금도 그가 왜 젊은 나이에 죽었는지 궁금하고 또 아쉽습니다. 어쩌면 내 인생의 실타래는 그곳에서 마구마구 엉켜버렸을 것이니까요. 나는 이후로 조직 어디에나 존재하는 왕따가 되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결국 사표를 냈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나는 똥지게를 져도 이보다 나으리라고 생각한 거죠.”

 

 

3

 

    나이 마흔이 넘어 새우잡이 배를 탔다. 공직을 떠나 벌린 사업에 실패한 나는 아파트도 담보로 날리고, 죽으려고 간 곳이 바다다. 그곳에서 그물을 드리우고 새우를 잡고, 그 새우를 잡고기와 분리하는 작업까지 쉴 시간 없이 일했었다. 섬에 도착하면 배 갑판에서 4홉들이 막소주를 마시며 춤추듯이 40키로짜리 플라스틱 오가구에 새우를 담고 퍼 올렸다. 한 달에 두 번 물  때에 맞춰 쉬었다. 그 때는 그물을 손질하고 어구를 정리하고 나면 우리들은 그동안 못잔 잠과 술, 노름, 계집에 저마다 바빴다. 그리고 칼부림 등으로 하루가 마감됐었다. 

대다수는 빚을 안고 꿈을 버렸다. 나는 파도치는 바다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짐승 같은 삶을 벗어나려고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저를 구원하소서. 이곳에는 성경도 목사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빈손 들고 기도하오니 저를 살리소서.’

 

 

 

“그래도 바다는 좋았습니다. 하늘의 뭉게구름과 망망대해,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무인도들, 비바람 파도에 닳고 닳아 둥글고 납작하게 된 ‘달배’와 찢기고 씻기어 날선 칼끝이 된 ‘설픈녀’라는 이름의 무인도는 무슨 사연을 간직하였을까? 비가 개이고 무지개 뜬 무인도 능성이에 일렬로 늘어선 흑염소 떼들, 해 지면 방파제에 부딪쳐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파도들……. 그 모든 것들이 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었으니까요.”

  

  나이 쉰이 넘어 노동일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옆에 서있다. 굴삭기는 도로 한쪽에 길게 도랑을 만들고, 나는 가로등 공사를 위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신작로는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뚫려 수지에서 신갈까지 이어져 있다. 동녘에서 떠오른 해가 가로수의 그림자를 서쪽으로 길게 펼쳐 놓았다. 그림자는 하늘의 구름과 휘뿌연 황사, 매연, 고속도로의 먼지 등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고, 해가 점점 떠오르자 조그마해졌다.

   벌써 며칠 동안 뙤약볕에 서있었으므로 나는 얼굴이 깜뚱이 사촌이 되었고 유일한 그늘인 가로수 그림자에 매달려 온종일 맴을 돌았다. 정오가 되면 그늘은 가로수 발목에 매달렸다가, 오후가 되면서 야속하게도 고속도로 쪽 개울가로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다. 그늘을 잃어버린 불쌍한 노자의 목은 연신 불을 토해내었다.

물을 마시려고 했으나 거의 떨어져 한모금도 못되었다. 따스한 물은 더욱 갈증을 돋군다.

   "오오! 여기는 그늘이 없고 다만 폭염뿐,

   잔인한 사월이 가고 계절의 여왕! 오월의 끝자락에서

   물이라도, 시원한 물이라도 풍족했으면……."

   남쪽 도로 끝에서 점하나가 보이는가 싶더니 '투스카니' 한대가 코앞으로 빠싹 다가온다. 내 통제봉을 무시하고 그놈은 으르렁거리며 슬금슬금 내 앞으로 지나간다. 짙게 썬팅한 차안에서 젊은 놈이 씨익 웃는다. ‘야! 너 같은 놈은 치여도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앞을 지나는 차의 꽁무니를 통제봉으로 "툭"하고 때렸다. 그 순간 차가 서더니 썬글라스를 쓴 젊은 친구가 밖으로 나왔다.

   "씨팔! 뭐하는 거야? 너가 뭐야?" 그는 금방이라도 칠 것 같은 표정으로 주먹을 휘저었다. 빨간 바탕에 하얀 야광띠가 쳐진 청소원복 차림을 보고 그는 나를 무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짜고짜 반말에 욕이라니, 오! 어찌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근원모를 무력감이 말문을 막는다.

   "당신, 왜 통제에 안 따르는 거여? 너는 용가리 통뼈냐?" 말은 힘차게 뱉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이 빠졌다.

   "뭐? 그래, 용가리 통뼈다. 어쩔래? 니가 뭔데 도로를 통제하냐구? 재수가 없으려니까. 참."  ‘아들뻘인데……’ 욱하는 것이 속에서 치밀었지만 본능적으로 참아야한다고 느꼈다. 

   "당신! 도로공사 하는 것 보이지도 않아?"

   "안 보인다. 어쩔래?"

   "젊은 것이……."

   "젊은 것이? 니가 젊은데 보태준 것 있냐?" 갈수록 기세가 등등해진다. 작업반장이 달려와 말렸다. 싸우는 바람에 도로가 어느새 혼잡해져 버린 것이다.

  날씬한 자태를 뽐내며 휑하니 투스카니가 사라져간 도로가에 엉겅퀴의 자색 꽃망울이 줄기 끝에서 곱게 피어나더니 색깔이 점점 옅어지고 급기야 하얗게 변한다. 뜨거운 폭염에 바짝 마른 꽃의 주둥이가 살며시 벌어지고 속에서 솜털이 솟아난다. 그것은 이내 커다란 솜사탕이 되었다가 한 낯의 태양 볕에 뽀송뽀송해졌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드디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비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허공에 솟아오른 솜사탕은 햇볕에 반사되어 영롱한 보석이 되어 내 마음을 달래준다. 

멀리서 구청 표시를 단 관용차량 한대가 다가오더니 구청공무원이 내렸다.

   "누구입니까? 싸운 사람이?" 젊은 공무원은 다짜고짜 들이댄다.

   "전데요? 젊은 친구가 통제하는데도 막 지나가기에……."

   "이 공사업체 이름이 뭡니까? 책임자 오세요." 큰 소리에 반장이 황급히 쫒아왔다.

   "제가 책임자인데요. 죄송합니다."

   "당신, 공사하기 싫어? 왜 민원을 야기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요." 반장이 계속 굽실거렸다. 차가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자, 반장이 노기등등하여 다가왔다.

“당신! 이리와 봐. 싸우지 말고 조심하라고 나이 든 사람을 시켰더니 또 사고 쳐? 지금 당장 그만 둬!” 그리고 반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나는 통제봉으로 엉겅퀴 꽃망울을 함부로 쳤다. 깜짝 놀란 엉겅퀴들이 솜사탕이 되어 허공에 솟구친다. 석양에 물든 엉겅퀴 꽃망울이 내 눈을 자극한다. 나는 연신 눈을 비벼댔다. 수도 없이 잘렸는데도 막상 보따리를 쌀 때면 가슴이 저민다.

   직장을 잃어버린 노자의 퇴근길은 서글프다. 노동판이 언제나 그렇듯 제대로 씻을 곳이 없어 몸에서는 인취(人臭)가 난다. 그래서 언제나 죄지은 놈처럼 버스 한 쪽 구석에 조심스레 앉는다.

   "어, 이사님 아니세요?" 버스를 갈아타려는데 인파속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다.

   "누구? 아! 김기사 아냐?"

   "퇴근중이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가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말한다. 나는 숨고 싶었다. 한때 회사에 있을 때 잠시 불렸던 '이사님'이란 단어가 자꾸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이사님, 소주 한잔 하시죠."그가 내 손을 잡아끈다. 깡마르고 항상 면도도 제대로 안 해서 까칠하던 예전 그의 모습이 깔끔하게 변해버린 탓에 약간 얼떨떨했다. 그가 너무도 반가워해서 우리는 '매산'시장의 꼼장어 집으로 들어갔다. 배도 출출하고 꼼장어의 구수한 냄새에 끌려 우리는 많이 마셨다. 젊은 그는 이름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고기가 익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눈이 매워서 맺힌 눈망물 속으로 파로라마처럼 옛일이 떠올라 펼쳐진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기러기는 푸른 호수와 풍부한 먹이가 있는 남쪽으로 떠날 채비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변화해야 하는 겁니다. 안주(安住)는 죽음입니다. 겨울이 오면, 호수가 얼고 먹이부족과 추위로 떠나지 못한 기러기는 죽을 것입니다." 나는 내 스스로 감동하여 5명의 직원을 둘러본다.

   "이사님! 적당히 하시죠. 졸려요." 김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나는 화를 자제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다.

   "이사님! 우리는 피곤해요. 솔직히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거든요. 조금 있으면 출장가야 하구요. 잠도 부족해요……. 그렇다고 이사님이 봉급 올려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못 올려줄 것은 뭐냐? 성과가 좋으면 내가 사장님한테 강력히 권하면 되지."

   "그러시지 말고 고용보험이나 들어 달라고 하세요." 나는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슬픈 기억이다. 그 회사 사장은 나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직원을 해고하고 문을 닫았다.

   "이사님! 그 때 이사님 강의는 끝내 줬어요. 그 뭣이냐, 그렇지 갈매기, 아니 기러기가 날아가고, 변화! 맞아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다 되진다." 그는 술이 취했다. 술상에 연신 머리를 처박아 가면서 중얼거린다. ‘진작 일어났어야 됐었는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꼼장어를 태우는 연기가 허공에 가득하다. 눈이 맵다. 연기는 요술램프에서 나온 거인으로 변해서 내 앞에서 열변을 토한다. 의미 없는 단어들이 나비처럼 불판에서 솟아오른다. '변화', '블루 오션', '브레인 스토밍', '벤치 마킹', '쥐트랙 벗어나기',…….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단어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라 춤추면서 나를 희롱한다. 나는 엉겁결에 주먹을 불끈 들어 허공에 내리쳤다.

   "아야! 이사님! 왜 쳐요? 씨발, 그만하라구요. 우리는 피곤하니까." 그가 다시 술상에 머리를 처박는다.

 

 

 

“여러분! 저는 인생의 황금 같은 나이를 바다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산골짝에서 숨어살며 최근까지 노동일을 했습니다. 일기장을 읽다가 그 시절 참으로 길고 긴 하루의 이야기를 옮겼습니다. 허울 좋은 이사랍시고 매일 아침 1시간 정도 떠벌린 이야기가 얼마나 부질없는 말이었는지 김기사가 일깨워 주었거든요.”

 

 

4

자꾸 마음이 서글퍼진다. 드디어 겨울이 오고 나는 떠나지 못한 기러기, 실업자가 된 것이다.

“여보, 이참에 아예 노동일 그만두면 안돼요? 이제 나이도 들어가고 결혼을 앞둔 아이들 체면도 있는데 매일 똥강아지처럼 때와 땀에 절어오는 당신을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그리고 정의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매일 흥분하는 것도 당신이 노동일하면서 더욱 더 그러는 게 아네요? 나는 그런 당신 얘기를 통 이해할 수가 없어요. 토지주택공사가 비대해진 게 국토해양부의 간부들이 낙하산 훈련장을 지으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고, 그들이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집 없는 서민이 늘어간다는 말이, 말이에요 막걸리에요? 나나 되니까 그렇지 남들이 들으면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할 거예요. 요즈음 들어 당신의 몸도 약간 비뚤어진 것 같고, 허리도 더 구부정해진 것 같단 말예요. 앞으로 어쩔려구 그래요? 나라걱정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제는 처자식 먹여 살릴 궁리나 하시라구요.” 아내는 방문을 삐썸 열고 천천히 말한다.

“ …… ”

“여보, 다녀올게요. 여보! 그러지 말고 이렇게 매일 노느니 기도원에라도 가보지 그래요? 충청도 어디라던가 그곳은 하루에 한번만 예배를 보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래요. 상담도 가능하고 무료라던데…….” 아내는 잠시 뜸을 들이다 포기하고 문을 닫는다. 이내 현관문이 쾅하고 닫힌다.

갑자기 멍해진다. 드디어 나는 동굴에 유페되었다. 나는 그곳에 갈 수가 없다. 패를 깔아놓는 자의 하느님과 패를 떼는 자의 하나님이 같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선과 악의 주체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어쩌면 그곳에 가봐야 하는지 모른다. 더 이상 카드 패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벗어나야 한다. 온갖 적의, 위선, 허무…….’ 허공에서 카드패들이 춤을 추며 어서 오라고 붉은 혀를 날름거린다. 잠시 심호흡을 한다.

“여기서 그만 둘 거야?” 카드패가 속삭인다.

“그래, 어차피 오늘도 표 떨어지기는 틀렸는걸.”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안돼,”

“어째서?”

“표가 안 떨어지면 오늘 하루도 되는 일이 없을 걸.” 이제 조금 후면 점심때다.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과는 달리 손은 다시 마우스를 만지고 있다.

“앞으로 열판만 해볼까? 그리고 무조건 손을 떼는 거야. 여기서 스톱하는 것이 정답인데…….” 나는 곰곰 생각하며 카드 패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다른 게임도 많은데, 요 단순무식한 게임이 은근히 부아를 돋운다. 어떤 때는 잘 떨어지다가 어떤 때는 온종일 떨어지지가 않는다. ‘요놈이 나를 희롱하네. 잘 해봐야지.’ 나는 눈을 부비고 기지개를 켠 뒤 자세를 가다듬었다. 카드패들도 숨을 죽인다. 길게 늘어 선 카드패들이 한줄 씩 떨어진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안 떨어지고 배겨?” 나는 마우스에 힘을 주어 마지막 패를 눌렀다. ‘아뿔사…….’ 나는 신음을 토했다. 가장 높은 숫자인 킹과 짝수패가 우루루 쏟아져 각 줄에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나쁜 놈들!’ 나는 카드 프로그램을 만든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솟구쳤다. 용의주도하게 시간을 갉아 먹는 음모자들 찾아 처죽이고 싶었다. 바로 전번에는 마지막에 똑같은 숫자가 쏟아졌던 것이다. 나는 소인국의 사람들이 컴퓨터 속에서 강한 자들의 사주를 받아 패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내가 안하면 된다. ‘로또’도 안사면 되고, 그러나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의, 권력, 정보의 불평등 같은 커다란 문제가 뒤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패를 보고 나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도처에 있으며 모두 음지에 숨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고객을 무시한 채 오직 자신과 조직과 강한 자들을 위해서!

창밖으로 땅거미가 깔린다. ‘에이,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 아무런 쓸데도 없는 일에 매달리다니.’ 괜시리 화가 나고 초조하다. 이제 딸과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집안일을 해 놓아야 한다. 어쩌면 내가 있는 곳은 감방, 동굴, 비무장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무장지대?’ 그렇다. 나는 지금 온갖 살의, 모순, 음모, 개발주의자, 빨갱이, 파랭이, 진보, 보수 등 금기가 득시글대는 철조망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하늘에는 온갖 새들과 바람, 구름들이 자유로이 넘나드는데…….

컴퓨터를 덮고 집안일을 거둥거둥 해치웠다. 무장지대에서 돌아온 그들의 추궁에 대처해야 한다. 창밖을 보니 몇 집 건너 불들이 켜졌다. 오늘도 몇 집이 떠나갔다.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갈 곳이 있다. 쫓겨 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갈수록 생활은 어렵고 삶의 찌꺼기처럼 짐은 많아 이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오십 넘은 나이에 머리 둘 곳이 없다니? 아! 출구부재의 상황에서 시간만 축내는 짐승 같은 놈!’

아내는 아직도 옛 상처를 들먹여 나의 영혼을 뒤흔든다. ‘그러게 왜 좋은 직장 때려 치고 처자식을 이렇게 고생시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수없이 치렀던 아내와의 대전투가 진저리가 난다. 마지막에는 집세가 싼 공군비행장 근처인 세류동으로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있지만 서글픔이야 이루 말하랴? 참 많이도 내려왔다. 우리들 앞에는 가족이 해체된 원룸족, 모텔이나 여관의 장기방족, 쪽방촌, 그리고 그 앞에는 만화방이나 찜질방을 전전하는 무리가 있고 마지막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노숙자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 뒤에는 하나씩 사다리가 치워지고 타고 올라갈 줄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담벼락이 쳐지고 그것은 옹벽이 되고 이내 성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들은 집나가서 쪽방생활을 시작했고, 딸은 유학도 못 간 가난한 집의 음대성악과 졸업자다. 아내는 혼자 겨우 월세나 내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일이 없어 그저 쉬는 날이면 얼어붙은 듯이 방안에 틀어 박혀서 표때기나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승의 삶이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단두대 위 죄수의 삶이 아닌가? 단두대의 칼날이 왜 이리 더딘가? 강한 자들의 착취를 돕는 망나니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어스름이 오면 집안을 정리하고 밤이 늦으면 아내가 돌아오고, 자정을 전후하여 아들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세운 후 출근(?)하고, 딸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늦게 들어와서 씻는다든가, 전화를 받으면서 요란이다. 그나마 아들이 집을 나가면서 변수가 줄어들었다. 하루 종일 자빠져 자는 백수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다. 늦게 들어온 아내는 현관에서부터 코를 킁킁거리고 방바닥을 닦았는지 세탁기를 뒤져 빨래를 했는지 살피며 법석을 떤다. 그래서 쉬거나 자야할 시간에 집안은 역전 대합실이나 공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은 마치 저항할 수 없는 권력과 제도가 되어 힘없는 가장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수화기가 울린다.

“아빠! 안녕하세요. 그간 바빠서 전화 못 드렸어요. 지금 이 시간에는 안주무실 것 같아서요. 전에 있던 곳은 그만두고 안산에 있어요.”

“타이어 공장에 있다더니, 건강하냐? 잘 그만두었다.”

“알고 보니 평이 나쁜 회사였어요. 고무냄새가 너무 심해서 같이 일하는 형도 토하고, 저도 힘들어서 며칠 쉬었어요. 환경개선도 안되고요.”

“그래, 너희들을 비싼 임금으로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잘 그만 두었어.”

“일하면서 아빠생각 많이 했어요.”

“그랬드냐? …….”

“이곳은 전보다 나은 것 같아요. 또 전화할게요.” 전화가 끊겼다. 갑자기 멍하다. 우주선이 도킹을 끝내고 모선에서 떨어진 것처럼. ‘다시는 아들과 화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빠! 늦었어요.” 딸이 방문을 삐썸 열고 말한다.

“미안해요. 아빠…….” 방문이 닫히면서 나의 노여움도 닫힌다.

 

 

 

“여러분! 철거를 앞둔 사람의 심정을 아나요? 뿌리 잘린 허울 좋은 나무가 서서히 말라가는 것과 같으니까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죠.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세상에는 아름다운 구호들이 난무합니다. 하루에 100억이 넘는 이자를 지불하면서 그 넓은 땅을 5년 이상 묶어두는 토지주택공사를 보면서 ‘착한 개발, 아름다운 개발은 없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5

 

<에필로그>

나는 다시 일을 한다. 그것도 노동일이 아닌 직장생활이다. 세상 사람들이 졸업할 나이에 입학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내가 살던 수원의 고등동은 철거되었지만, 그 사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국민행복기금’에 부채탕감 신청을 해서 올해 탕감을 받은 것이다. 10년의 상환기간이라, 예순이 다된 내가 죽기 전에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봉급이 차압될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즉 직장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빚’이라는 단어에 점 하나가 붙어 ‘빛’이 된 것이다. ‘피차 사랑의 빚 이외에는 지지 말라.’는 말처럼 죽는 날까지 갚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이제 영혼이 핍박받는 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비록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으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딸도 어엿이 결혼을 했고 아들도 새로운 직장을 가졌다. 공직을 그만 둔 일을 들먹이며 아내는 가끔 내 트라우마를 건들지만 점점 그 도수가 줄어든다. 공직은 아픈 상처다. 나는 공직이 생애의 보람 있는 직장이라 믿었었다. 그곳에서 청렴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청렴공무원상 받는 것을 보는 것도 가슴 아팠다. 나는 제법 긴 기간 동안 상 하나 타지 못했다. 직원 평균 1억 원의 뇌물을 받은 기관도 있다는데 그곳의 직원도 상은 많이 받았을 것이다. 4대강 사업에 기도만 해도 훈장을 받고 .....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거나 청렴한 사람이 상 받을 확률이 있을까? 그러다 보니 어쩌면 이렇게 불평도 많아졌겠지. ‘서정쇄신’, ‘정의사회 구현’,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거쳤다. 그때 공사에 남았어도, 아니면 동료들과 같이 어울려 먹고 마셔댔어도 내 인생이 이랬을까? 이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노동판을 전전하며 ‘세상을 떠도는 뇌물, 비자금이라는 산더미 같은 파도는 모두 노동이라는 성스러운 샘-노동자들의 피와 땀-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리오. 그런데도 하고픈 말이 많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루저’의 입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에 불과하다. 모두가 떠나갔다. 남은 인생동안 지독히도 외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늦었지만 이제 나는 쓸 것이다. 모두가 떠난 후에 다가온 문학과 더불어 남은 생을 해로할 것이다. 슬픈 얼굴의 기사 ‘세르반테스’도 딱 이 나이에 ‘돈키호테’를 출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주신, 흐르는 구름, 돌아드는 바람, 하늘, 숲을 보고 가끔 노자의 노래를 부르리라.

 

사향노루는 그 사향 때문에 평생을 쫒겨 다니며 살고

노자는 그 알량한 기술 때문에 평생이 고달프다네

노동자들이여!

힘자랑 술자랑을 말찌니

그대의 청춘은 짧고 노년은 길며

젊은 날에 그대가 빤 술병만큼이나

약병이 그대의 벗이 될지라

부디 그대의 가슴을 열고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게

무릇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많나니

흐르는 구름, 돌아드는 바람, 하늘 과 숲, 아름다운 우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 졌고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라네.

 

 

 

 

“여러분 저의 신세한탄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지난했던 세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어도 조금은 후련합니다. 이제 마쳐야겠네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