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 만에 보르헤스를 다시 읽는다. 바쁘다는 핑게로 미뤄오다 거칠지만 우선 쓴다. 훗날 퇴고를 염두에 두고.....
[ 바빌로니아의 복권 ]
1.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시사하는 의의
보르헤스는 여기서 게임과 우연에 의해서 지배되는 목적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목적 없는 세계는 허무하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바빌로니아의 지도자가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복권을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소한 우연은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우연으로 변질되었고 복권을 발행하는 회사는 점점 더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됐다.
2. 줄거리
나는 바빌로니아에서 모든 사람이 그러했든 것처럼 총독도 하고 노예도 했으며 감옥생활도 했다. 내가 대담하기조차 한 다양한 체험을 한 것은 복권제도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옛날의 복권은 즉석에서 행운을 추첨하는 방식이었는데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실패의 원인은 그 방식 속에는 단지 희망만을 겨냥하고 도덕적 가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행운의 숫자들 사이에 불운의 숫자(30개의 숫자마다 1개의 불운의 숫자)를 끼워 넣자 이중의 아찔한 재미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복권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복권을 사지 않는 사람들은 소심한 사람, 즉 겁쟁이로 간주되었고, 벌금을 물게 된 사람들도 조롱을 받게 되었다. 회사는 추첨에서 진 사람들이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소송을 했고 판사는 벌금이나 구류를 살라는 판결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벌금대신 감옥행을 선택하자 회사는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추첨 발표문에는 벌금대신 구류기간만을 명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비금전적 복권의 출현이었고 대단한 성공과 더불어 회사는 복권놀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불운의 숫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논리학뿐 아니라 균형론에까지 열성적이어서 행운의 숫자들은 돈으로 계산하고, 불운의 날짜들은 구금날짜로 계산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교회의 사제단들이 판돈을 늘리고, 공포와 희망의 비율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변칙을 저지르자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은 소동을 일으켰고 마침내 부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음과 같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첫째, 그들은 회사로 하여금 민중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둘째, 복권을 비밀스럽게, 무료로, 모든 사람들에게 실시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로 복권에 대한 상업적 판매가 금지되었고,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60일 밤마다 시행되는 추첨에 참가하게 되었다.
회사의 직원들은 암시와 마술을 사용하였지만 그것의 과정이나 운용방식은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그들은 석사자상, 카프카라고 불리는 변소, 먼지 낀 수도관 틈바구니 등에다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놓아두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사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운명의 판단을 존중하는 사람들인데, 만일 복권이 우연에 대한 강화, 즉 우주에 주기적으로 혼돈을 주입시키는 것이라면 단 하나의 단계가 아닌 모든 추첨의 단계에 우연을 개입시키는 게 옳을 거라는 가정을 하게 됐다. 이러한 가정은 괄목할 만한 개혁을 가져왔다. 회사의 자비로운 영향아래 모든 것은 우연으로 물들었다.
회사는 신성한 겸손함을 가지고 자신을 비밀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히 누가 회사의 직원들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끊임없이 회사가 발하는 명령들은 사기꾼에 의해서 남발되는 명령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온갖 형태의 추측들이 난무하게 됐는데, 어떤 사람은 회사는 수세기 전부터 없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회사가 전지전능하다고 하고, 또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떠벌린다. 어떤 사람은 바빌로니아는 ‘우연들의 영원한 놀이터’라고 한다.
3. 작품의 의미
○ 교회의 사제단들이 판돈을 늘리고, 공포와 희망의 비율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변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형교회를 꿈꾸며 개척의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변칙의 유혹은 평생을 따라 다닐 것이다.
○ 복권을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비밀스럽게 지급한다는 말은 지금의 선거제도를 말하는 것 같다. 보통, 직접,
비밀, 평등선거 말이다.
○ 대중들의 도박욕구는 세대, 국가를 초월한 욕구이고 이 욕구를 이용하고 싶은 욕구 또한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한 욕구의 해결책이 복권제도다. ‘로또’의 설립취지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마움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 복권제도에서 보여주는 법정은 카프카의 우연과 허무의 법정을 떠오르게 한다. 카프카가 '심판'에서 보여준
세계처럼 어느 날 이유 없이 체포하고 선고도 없이 처벌하는……. 하지만 보르헤스의 법정은 비록 단두대에
서더라도 모두가 참여하는 놀이터의 법정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4. 나의 소회
○ 나는 성을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서 진실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은 나의
맘을 흔들고 발을 슬프게 한다. 성으로 가는 길이 없다는 소식도 들리고, 없는 것은 아닌데 한없이
휘어져서 우리가 지금 다가가는지 멀어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복권을 사는 것이다. 복권회사는 공정해서 누구에게나 기회를 보장 한다는 것이다. 즉 당첨자가 언제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진실 을 보장해 준다는 말과 같다.
○ 더욱 더 기쁜 소식은 우리가 설령 실수로 사람을 죽여서 사형수가 되는 경 우가 있더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복권이 있기 때문이 라는 것이다. 가령 100명의 사형수가 한 달에 한명씩
단두대에 설 경우,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1%에 불과하며 계속 사형수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 확률은 영원히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방 안에서 희희낙락하며 지낼 수가 있고, 당첨이 되도 오로지
우연의 결과이기 때문에 조금도 억울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형수가 그러한데 다른 범죄야 우스운
것이다.
○ 나는 지금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할 지 복권을 사고 마음대로 살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 중이나, 이 세상을
우연과 혼돈으로 이끄는 복권회사의 직원들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5. 에필로그
○ 바빌로니아에는 아름다운 회사가 있었습니다. <강착통>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회사의 직원들은 신성한
겸손함을 가지고 음지로 스며들어 성스러운 '진실'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에 방카를 짓고 그 위치를,
그리고 자신을 비밀로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그 회사의 충실한 직원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도 진실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 바빌로니아의 아름다운 회사의 직원들의 충실한 활동 덕분에 바빌로니아는 더욱 강대해지고 더욱
위대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밀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조치에 모든 국민은 침묵이라는 미덕으로
화답했으며 기득권자들은 아름다운 회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더욱 강대해졌습니다.
○ 바빌로니아가 세계사에 독보적인 바벨탑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아름다운 회사와 그 충직한
회사원들에 힘입은 것이라 합니다.
○ 지금은 사라진 전설이지만 그곳 어딘가에는 진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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