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소설을 읽어주고 평을 내준 한 고마운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의 과분한 평에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을 올렸다.
"님의 평에 감동받았습니다. 마치 격벽에 갇힌 마지막 생존자가 소통불가/출구부재의 카프카적 상황에서누군가 격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감동 말입니다.
한편으로 침대 위에 누워 MRI/CT촬영을 하고 의사의 설명을 들을 때의 느낌도 받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 창중스럽다는 말에 대해서 한 마디: 윤창중(유부남)처럼 Sex-holic에 빠진 세태 비판 용어입니다. "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작가로서의 각성에 이르면서, “작가는 그 무엇보다도 작품으로 자기를 말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학우님의 글을 접하면서 답답했던 뭔가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잘 만들어진 소설’은 있으나 ‘감동을 주는 소설’을 접하기 어려운 요즈음 현실에서 학우님의 글은 해갈의 단비 같았습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듯한 등장인물들의 풍자와 요설 그리고 위트에는, 상상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작가의 고단한 삶의 무게도 잔뜩 실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에 대한 핍진한 내면 묘사와, 거친 세파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단정하기 그지없는 유려한 문체로 다가오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잔잔한 울림까지 주었습니다.
지금 상태로도 잘된 소설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조금씩 손보고 에피소드의 반복을 절제하여 구성한다면, 더 훌륭한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학우님의 필력과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제가 감히 범접할 수 할 수 없는 높은 경지를 느끼게도 했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우리가 학우님의 감동적인 글을 읽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학우님의 소설을 읽고 나서 집사람이 뱀띠여서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저에게 긴 혀를 널름대지 않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