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빛과 빚- 영원한 이방인

쥬띠 2017. 7. 6. 12:34

[ 빛과 빚- 영원한 이방인 ]

 

이방인의 뫼르소는 한 낯의 지중해 해변에서 빛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실상을 잘 파악해 보면 그의 살인은 정당방위에 가깝다. 그가 사형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그가 정직하다는 데에 있었다.

예심판사의 그대는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거짓말을 했더라면 사태는 그렇게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신부 앞에서 회개한다고 말했더라면,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는 중세시대의 마녀가 되어 화형에 처해지는 신세가 된다. 그는 그런 질문을 하는 판사나 변호사, 신부가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제도권의 양심을 대표하는 그들이 타인의 양심을 재단하다니 뫼르소에게는 얼마나 우스운가? 그런 뻔한 답변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신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고 안 쏠 수도 있다. 한 낯 지중해 해변의 태양 빛은 뜨거웠고 아랍인이 꺼낸 칼날의 빛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쏘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총알이 다섯 발인데 바로 쏘셨나요?’ 그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땅땅땅땅!하고 죽은 시체 위에, 네 발을 잠시 뒤에 쏘았다고 말한다.

 

그 빛에서 점 하나를 떼면 빚이 된다. 오늘 날은 빚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루저가 되고 이방인처럼 살아간다. 위너들은 루저들의 도덕성에 의심을 가지고 제도권의 양심을 들먹이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그들의 눈에는 빚을 지고도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는 놈인지도 모르겠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빚을 정식으로 갚기 시작한 지 10여년이 되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동안 갚은 빚이 수억 원에 이르렀다. 내 빚이 그토록 많았단 말인가!!!!

내가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퇴직금에 아파트까지 털어 넣고 나름대로 고용도 창출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 사이 같이 망한 대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은 공적자금이라도 받지 않았는가?

내가 동생 집을 담보로 이천 만원을 우리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몇 년의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내다가 지금은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지난달에는 도저히 납입이 어려워 내지 않자 00지점에서 독촉 전화가 왔다. ‘월급날 갚을 게요. 그리고 내가 그 돈을 갚기 위해 불입한 돈이 얼마인지는 아세요? 모르긴 몰라도 오천 만원 가까이 될 거예요.’

00지점 담당자가 웃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니까. 그가 심하게 독촉하지 않은 것은 이제 거의 납기가 끝나가고 그동안 성실히 갚아왔고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이지, 내가 2,000만원의 원금을 갚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5,000만원이나 갚은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최근에는 빚이 버거워 여러 부채 가운데 하나를 갚지 않고 버텼다. 독촉도 하지 않기에 그냥 지난 것이 반년 쯤 되는데 법원에서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했다. 집달리들은 6개 품목에 빨간 딱지들을 붙였다. 냉장고, 세탁기, 노트북, 컴퓨터 등이었다. 아무리 뒤진들 붙일 만한 것이 없었나보다. 그들은 3,4일 후에 인터넷으로 공매에 부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갔다.

나는 부랴부랴 연락을 취해 타협에 들어갔고 소송비용과 그간의 이자 등을 추가 부담하는 선에서 최종 결정을 했다. 내가 전화했을 때 담당자는 친절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네가 도망 가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그는 파산신청을 하시지요. 그 많은 다른 사람들의 빚을 갚아오시다니요. 법원이 제일 확실해요.’

 

빚이란 것은 영혼도 갉아먹을 수 있는 벌레이다. 10년이 넘으니 하나 둘 채권이 사라진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소멸시효란 없다. 빚 받기 어려우면 더 지독한 놈들에게 채권을 넘기고 그들은 독촉장과 협박전화 일방적인 소송을 통해 어느새 빚을 공룡처럼 키워놓고 목을 물 결정적인 시기를 맹수처럼 호시탐탐 노린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안 되는 젊은이들은 빚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구십, 백 살까지 사는 시대에 이 세상을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살 수야 없지 않은가?

 

나는 많은 사안에 시니컬하고 부정적이다. 어디 빚의 문제만이겠는가! 배를 타며 노동일을 하며 보고 겪은 수많은 부조리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시대를 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아마 나이 70 정도에 이르면 모든 빚(자녀, 제도권 등)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300키로가 넘는 청새치를 잡은 기쁨도 잠시, 대가리와 뼈다귀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 헤밍웨이의 노인처럼 말이다.

세상은 노인의 바다처럼 상어 떼들로 넘쳐난다.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저 밀림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사자 꿈 말이다. 상어떼에게 도덕과 자비를 들먹일 수는 없으니까.

70이 되어 대가리와 뼈다귀만 남으면 더 이상 괴롭힘을 받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게서 뜯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들은 떠날 것이고 나는 희랍인 조르바처럼 자유로워질 것이다.

피차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말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유로워지길 소망해 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겁내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_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라고 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말이다.

Nothing!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어차피 인생도 Nothing from nothing(공수래 공수거) 아닌가!

어차피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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