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빚- 영원한 이방인4 ]
빚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은데(내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뭐 좋은 일이겠냐 만) 빚만 생각하면 자꾸 화가 뻗친다.
언젠가 700백만 원 가까운 현금을 은행에 넣었다. 시간이 늦어 다음 날 정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저녁 잠자리에서 생각해 보니 그 돈이면 연체이자와 현금서비스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하겠다 싶었다.
오전에 은행에 들르니 지급정지가 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방심한 것이 생각나고 가슴이 덜컹했다.
은행은 그 많은 돈을 가져가 나의 연체이자를 포함한 이자로 다 가져가 버렸다. 속이 상한 것은 그들의 규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규정에 따라 은행에 가장 유리하게 그 돈을 처분해 버렸다.
내가 피하고 갚지 않은 빚을 그들은 정당한 소송절차를 통해 소송비용과 판결에 나온 이자 등, 규정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 빚의 이자를 걷어가고 원금을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나는 앙꼬 없는 찐빵처럼 비참함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물론 인력사무소를 전전하던 나는 주소마저도 여러 차례 옮겼으니 은행계좌 압류를 포함한 모든 결정이 궐석재판으로 정해진 것이다. 규정은 그들에게 가장 유리하고 빚진 자에게 가장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빛과 빚은 점 하나 차이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벤허란 영화에 보면 갤리선이 나온다. 그 갤리선의 위에는 화려한 갑옷의 군인들이 있지만 그 배의 바닥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을 맞아가며 노를 젓는다.
우리의 시스템도 갤리선과 다를 바가 없다. 온갖 규정으로 치장한 시스템 아래에는 신용 8등급 이하의 300만 명이, 로또, 경마, 카지노의 망가진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댄다. 어디 그뿐이랴, 고고한 시스템 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숱한 기금(경마, 로또, 카지노 등외에도), 기타 등등……을 먹고 산다.
그러나 분노의 대가로 얻은 탐욕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숱한 역사가 증명한다. 탐욕이 사라진 공정한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런 정부도 기금이라는 미명하에 형편없는 배당률을 주고 조폭처럼 다 떼어간다. 그러니 지하에서 온갖 게임이 복권이, 약물이 넘치는 거다. 정부보다 더 많은 배당을 준다는 꼬임으로…….
우리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기득권의 민낯을 보아왔다. 최근 몇몇 정치인의 말실수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말실수가 아니다. 자연스런 그들의 생각이 말을 통해 나왔고 그건 시스템 아래에 있는 대중들의 생각과 너무 거리가 멀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스템 위에서 파티를 즐길 때 쓰는 말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을 건널 것이다.
요단강 가에 서서 이방인이었고 구속되었던 뫼르소는 마지막에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소원을 말한다.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 (마치 예수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지도록, 나의 사형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도 그때는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다.
『오!!! 나의 인생길 끝마치고 아버지
맑은 품에 안기어
마음 깊이 간직한 그 사랑의 말
주님은 속삭여 주시리
사랑을 속삭여 주시리
사랑을 속삭여 주시리
속삭여주시리-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서』
더 이상 빚 얘기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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