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작별의식

쥬띠 2014. 3. 18. 10:47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먹고 사는 일인 것 같다. 밝히기 싫은 치부를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어 하나씩 하나씩 까발리고 되새김질을 해야만 한다. 신화적인 동물로 '카토블레파스'가 있다. '보르헤스'가 [상상동물 이야기]에서 이 동물을 다시 창조했다. 이 놈은 발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온 몸을 삼켜버린다.

 

   봉하마을 여행기를 일부 수정했다.

 

  토요일, KTX를 타고 수원역을 떠난 시각은 8시 55분이다. 쾌청한 봄 날씨에 혼자 떠나는 홀가분하고 쾌적한 여행이라……. 얼마만의 여행인가? 참으로 벼르고 벼르던 봉하마을을 아내와 아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홀로 떠나온 것이다. 혼자라 더욱 좋다. 같이 동행해 보았자 서로 상념의 무게가 다르니 나에겐 방해만 될 뿐이다. 좌석에 부착되어있는 접이식 책상을 펴고 책을 올려놓은 다음, 스트워디스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옆에 놓으니 제대로 자세가 잡혀서 기분이 마냥 좋아진다.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노무현 대통령! 나는 노동판에서 늘 그를 생각해왔다. 언제나 내가 그를 찾아갔지만 때론 그가 날 찾아왔다. 나는 그를 위해 틈틈이 ‘신나는 쿠데타’란 희곡 한편을 써 두었다. 봉하마을에 가면 내 작품을 영전에 놓고 기도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기회가 오자 포기했다. 나 스스로 내 작품에 자신이 없으니 오히려 누가 될 뿐이리라.

   돌아가신 날이 2009년 5월 23일이고 토요일로 기억된다. 그날도 인력사무실에서 송출되어 S전자 공장에서 전기작업 중에 그 소식을 들었었다. 소식을 들은 시간이 10시쯤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한참이나 푸르렀던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며 속삭였었다. ‘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제 아무도 모르게 나의 가슴 한 켠이 무너지고 오랜 시간 가슴앓이를 할 것입니다. 나는 살면서 죽고 죽음을 삽니다. 시간은 약이지만 기다림은 너무도 씁니다. 사람냄새가 그리워 흙 한줌을 움켜쥡니다. 허물없고 꾸밈없는 삶이란 얼마나 힘겨운가요?’

 

   왜 나는 그에게 그토록 빠졌던가! 그것은 그가 경상도 사람임에도 동서의 화합을 위해 진심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한 얘기를 펼치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팔십 중반이 되신 작은 아버지께서 “너는 전라도새끼라 그런지 싸가지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김대중이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가 없어.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어린 내 가슴에 선생을 가둬놓고는 못을 박아버렸다. 아직 살아계신 작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심중에 쌓인 말을 밝힐 계제는 아니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그 분은 내 상처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기억도 못할지 모른다. 인간이란 게 다 그렇다. 도대체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암 덩어리를 가득 가진 것처럼 고칠 길이 없다. 몸이 아프고 뭔가 깨달을 만하면 늙어 죽어버린다.

 

   나의 부모는 경남 고성과 통영사람인데 결혼해서 직장을 군산에 자리 잡고 나를 낳았으니 내 형제들을 제외한 모든 친인척이 경상도 사람인 셈이다. 선거철이면 외삼촌이며 어른들이 “김대중이는 간첩이니 찍으면 절대로 안 된다.”라고 또 못을 박았다. 그 시절, 봄이면 한창 꽃다운 나이에 보따리 하나들고 서울로 떠나던 호남의 영자나 순이, 철수처럼, 서쪽의 척박한 고향을 버리고 무작정 상경을 한 것이 벌써 사십년이 흘렀으니……. 참 징한 세월을 앓았다. 연좌제, 신원 특이자, 부역의 그림자들이 곳곳에 서려있었다. 호남이라는 이유로 짜장면 집에도 취직할 수가 없다니, 남들은 모르리라. 경계에서 울었던 사람의 마음을……. 본적지를 따지던 그 시절에 나는 본적지가 경남 고성이었고 어린 시절 통영에도 살았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영남사람 행세를 할 수도 있었다.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모진 마음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동물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어 보이고 모두가 코미디언으로 보인다.

 

 

   내려오는 KTX에서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이란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늙은 창녀의 노래’란 작품을 읽었었다. 꽃피는 봄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눈앞에 그 정경이 펼쳐지는데 나는 꽃 내음에 코를 벌름거리며 마치 내가 꽃 사태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그 때 ‘아,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라고 말하며 감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다시 작가의 작품을 대하니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새삼 부러웠다. 송기원 작가처럼 많은 작가들이 젊은 날에 재기를 보이고 등단한다. 그런데 나는 육십이 다 된 나이에 작가가 되겠다고 떠들고 나섰으니 기가 막히다. 지금 생각해도 더욱 웃기는 것은 술집에서 등단장벽과 문단권력을 게거품을 물고 성토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문학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 이제 삼년이 되어가니 이제 슬슬 맥이 빠진다. ‘여태까지 살면서 누구도 글을 한 번 써보지 그래?’라고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문재(文才)가 없고 그래서 때론 절망스럽기도 한데, 나에게 더욱 힘든 것은 ‘한국은 금기가 팽배한 나라’란 인식이 트라우마가 되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날을 노동판을 전전했고 노동에 대해 많은 사색도 했다. 그런 연고로 멋진 노동소설을 쓰고 싶어서 나름 조사를 해보니 조사를 할수록 절망감이 앞섰다. 이 땅에서는 노동소설로 성공한 작가도 드물고 관련 도서도 드물었다. 도서관에서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찾았는데 수원지역의 도서관들이 그 책을 갖고 있지 않았고, 비슷한 경우로 내가 찾는 책이 공공도서관에 없는 일이 많았다. 바벨의 도서관처럼 없는 책이 없지만 오직 한 권, 진실의 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 현실에서 나는 <노동소설, 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란 책과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그리고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란 책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을 읽고 나는 얼마나 감격했던가! 그것은 나에게는 문학의 신천지요 이상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열병에 들떠 한 주간을 보냈었다. 꿈속에서 싱클레어의 편지를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경애하는 우공님!

나는 고통에 허덕이는 시카고 식육공장 근로자의 비참한 삶을 보고 불의가 판치는 정글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나는 당신이 불우한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감동을 받았으며 당신께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세상은 온갖 불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이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우주의 쓰레기이자 폐기물들로서 천국에 부적합한 사람들이고 지옥에도

간신히 들어 올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살아 있은 적이 없기 때문에 죽을

필요조차도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의미 없고 항상 변화하는 깃대를 계속 쫓아다닙니

다. 결코 어떤 자리에 확실히 선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대변하지 않는 깃

대를 말이지요.

   우공님! 그대가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언제나 그대의 편에 설 것이며 그대를 우주의 어디선가 늘 지켜보겠습니다. -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싱클레어 」

 

   “아! 싱클레어……. 아름다운 황제의 숲 근처의 오지에 살던 리투아니아의 청년 ‘유르기스’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억압과 부정의 땅, 빈곤의 악몽, 고난의 지옥이었던 시카고의 가축수용장에서 겪는 처절하고 적나라한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늘 당신을 흠모해왔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글을 꼭 써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용기를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엉엉 울었었다.

 

 

   기차가 달그락 거리고 주위는 봄볕이 완연하다. 나는 송기원작가의 세 번째 작품인 ‘다시 월문리에서’란 작품을 읽으면서 ‘기가 막히군!’이란 신음과 함께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월행’을 읽으면서 모세관으로 빨려온 수분이 급기야 창틀에 맺힌 결로마냥 방울져 내리는 것이었다.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어머니가 자살을 했으니……. ‘아, 무슨 말을 하리오. 참, 징헌 인생도 있구나’라고 말하며 나는 책을 접었다. 그리고 눈물을 말아 올렸다.

   내 눈물의 본질은 무엇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강에 물이 가득하다.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라, 밀양강일까? 철교 밑으로 조그만 배 한척이 떠있는데 아마 어부가 고기를 잡고 있나보다. 그렇다. 김대중 선생! 내 가슴 속에서 한 삼십 년은 사신 분이니 작가에 대한 감회가 더 할 수밖에……. 젊은 날 선생의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보라매공원으로 여의도 광장으로 쫒아 다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숱한 인파 속에서 까마득하던 모습을 보려고 까치발을 하던 앳된 청년이 이제 그때 본 선생의 나이가 됐으니…….

 

   진영역에 도착한 시간이 12시51분인데, 버스를 한참 기다려서 타고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은 2시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나는 봉하마을 입구에서 국화 한 송이를 이천 원을 주고 샀다. 묘역에서 헌화하고 참배를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상념들이 무작정 다가왔다가는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당신께서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부관참시를 하고 주검에 치도곤을 가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의 적들은 당신이 예수처럼 부활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지요.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란 당신의 가르침처럼 동과 서가, 남과 북이 형제처럼 서로 화목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들은 오늘도 남북을 쪼개고 동서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부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그저 다 잊고 명부(冥府)로 돌아가시겠다고요.’

 

 

발가벗겨지고 파헤쳐진 주검 위에……

이제 그만 가시라고 국화 꽃 한 송이 놓아드렸네.

명박(冥薄)스럽고 창중스런 세상에서

미련 없이 떠나가시라고.

 

 

   방명록에 ‘외로워 마세요.’라고 써놓고는 미처 의미 있는 말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왜 그렇게 썼을까?’라고 부엉이 바위를 한참이나 올려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외롭구나. 그래, 내가 지독히도 외로운 게지. 그래서 홀로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봉하를 떠나기 전에 소머리국밥 한 그릇에 봉하 막걸리 한 통을 마시고 봉하 찰보리 빵 한 봉지를 기념으로 샀다. 올라오면서 ‘김원일’의 ‘마음의 감옥’을 읽다 작가의 약력을 보았다. 1942년생 경남 진영 출신이다. ‘진영?’ 아니 조금 전에 다녀온 진영? 봉하마을이 있는? 우째 이런 일이…….

 

 

   번듯한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봤다. 쾌청한 대구의 하늘이 방긋 웃는다. 기차는 KTX가 아니어선지 내려올 때와는 달리 동대구역을 지나 대구역에도 정차를 한다. 차창 밖으로 황혼에 물들어 가는 시가를 열심히 관찰해 본다. 국가의 부를 편식한 탓에 살이 오른 도시는 ‘우리가 남이가?’의 본 고장답게 완고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많은 지역을 다녀봤지만 소위 말하는 TK지역인 대구·경북지역은 거의 온 기억이 없다. 그래서 대구 경북지역은 참으로 낯설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들은 높은 담을 둘러치고 대청마루에 돌아앉은 노욕에 찌든 영감과 그런 부류의 사람들 이미지로 내게 다가온다. 광주가 피바다가 돼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배타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일까? 물론 이곳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이제는 잊을 만도 한데 저 가슴 아래부터 구정물이 피어오른다. 열차가 왜관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땅거미가 완전히 졌다. 거리의 가로등과 네온 불빛이 까닭모를 슬픔을 자아낸다.

 

   문학도 그럴까? 잘은 모르지만 지역문제는 없으리라. 하지만 이념문제는 첨예하다고 본다. 지난 번 대학로에서 ‘오태영’의 ‘천안함 랩소디’와 ‘칼 비트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란 연극을 보았다. 두 작품 모두 ‘명계남’이 주연이었는데, ‘천안함 랩소디’는 차치하고라도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작품성도 좋고 주말인 토요일이고 명계남의 멀티맨 연기가 돋보였지만 객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속에는 초대권 손님도 있을텐데……. 노무현을 사랑하고 가까이한 사람들이 겪는 유형 무형의 아픔을 생각하며 가슴에 고이는 씁쓸함이 한동안 가시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명계남씨는 저 춥고 배고픈 연극을 계속 하는데, 나는 시작도 않고 좌절하다니?

 

 

   이제 김대중 선생은 가셨다. 남들이 욕을 하건 칭찬을 하건 내 가슴속 문을 열고 표표히 가셨다. 마음 편하다. ‘이제 그 분도 보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 허니께…….’ 그분을 보내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허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삶이리라. 좁은 가슴 속의 못을 뽑아내고 허허롭게 살자. 내가 봉하를 간 것도 그분을 자유롭게 보내는 내 나름의 의식(儀式)이었지 않은가? 이제 훌훌 털고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져본다. 앞으로 지독히도 외로울 거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루저가 문학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외로움을 벗 삼고 열심히 쓰는 거다.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그 동안 휴대폰 전화기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경제에 실패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나는 그들에게마저 차선책일 뿐이다. 나는 어리굴젓에 비벼 꿀맛 같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어디선가 기차의 레일 소리처럼 규칙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적이 사라졌으므로 자본주의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대통령도, 정치가도, 재벌도, 고위 관료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경제를 외친다.

방귀도 함부로 뀐다.

그래서 경제 빼면 시체인 사람들이, 방귀를 뻥뻥 뀌는 사람들이

무덤 같은 세상을 휘젓는다.

 

 

경제는 대박이라며 사람들은 경제를 찾아서 모두가 뛰어다닌다.

경제가 대박이라는 소식이 우리 집에도 들렸으므로

아들도, 딸도, 드디어 아내도 경제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외로움, 소외, 왕따, 노숙, 고독사.......

이딴 것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그 때 내 가슴 속에서 '땡그렁'하고 새벽종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통일은 대박!'

그것은 소중한 나의 꿈을 개발하는 불도저, 타워 크래인들의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에 화답했다.

 

   그대는 태어난 장소로 인해 평생을 아파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중히 권하노니 허공중의 권세여, 위선덩어리여, 경제여! 이제 나를 그만 놔 주시게, 나는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을 뿐이네…….

   누군가는 벼락을 두 번 맞고, 누구는 강도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네. 하지만 그들이 무엇 때문에 핍박을 받아야한단 말인가?

 

 

   오! 제발 앵무새를 죽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