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피스텔 노인 – 8

쥬띠 2017. 2. 17. 14:19

[ 오피스텔 노인 8 ]

 

며칠 전에 오피스텔 노인이 잠깐 들러 관리비를 현금으로 맡기고 가신 이후로 오래 만에 나타나셨다.

그간 오피스텔 노인이 경비실에 너무 자주 찾아오고 오랫동안 머물러 경비도 불편을 호소했었는데 제법 오래 만에 관리실로 나타나신 것이다.

 

노인은 이제 TV를 볼 필요가 없어 유선방송을 해약하려고 하는데 자기가 해약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해약을 대신 좀 해달라고 들리셨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팔십 중반의 노인이 ARS 전화를 통해 해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일번 눌러라, 이번 눌러라 쉬지 않고 주문해서 못 하겠어.’ 노인의 비명에 가까운 말이다.

 

경리직원이 해약을 시도했고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입이 아니라 해약이니 더욱 그렇다.

노인이라 소리가 안 들려요.’부터 해약이유를 여러 번 설명하고 나서도 3개월 약정기간이 남아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둥, 계약자가 돌아가신 부인 명의라는 둥, 이런 전화를 대신 해주는 당신은 누구냐는 둥,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계속 유선방송 TV를 보기로 했다.

 

유선방송사는 셋톱박스를 새로 설치해주고 전보다 저렴한 월 6,600원에 다채널을 볼 수 있는 조건으로 새로 계약했다.

경리는 은행에 추가요금을 납부해 주고 신규계약을 하는 등 결국 몇 시간을 소비했다.

통화 중에도 노인의 음성을 계속 들려주어야 했다. 사기가 아닌 지 통신사는 꼬치 꼬치 묻고 노인을 바꿔달라고 하고…….

나는 경리를 면박했다. “나중에 누가 해약을 해주겠는가? 이 기회에 해약을 해주어야지. 이 복잡한 세상에!”

 

노인은 최근 바꾼 스마트폰이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며 예전의 핸드 폰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 세상이 너무 복잡해!’ 노인이 소리를 지른다. 핸드폰을 보니까 안 읽은 메시지가 수십 건이다. 전에 사용법을 알려드렸지만 소용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들이 여러 가지 계약관계를 정리하거나 해약하기는 죽기 전에는 더욱 어렵다. 더구나 노인들의 통장잔고가 남아있다면 조용히 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죽은 부인의 통장에서는 잔고가 제로가 될 때까지 자동이체 요금 등, 이런 저런 비용이 나갔다. 그래서 부인은 드디어 통장잔고가 제로가 됐고 이제 깨끗이 정리가 됐다.

 

노인이 가고 나니 커다란 적막 같은 것이 몰려온다. 몸 하나를 끌고 오가는 일이 노인에게는 작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