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나혜석을 생각하며

쥬띠 2014. 2. 20. 09:57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가 있고 해마다 4월이면 그녀를 기리는 행사가 있다. 올해도 '수원청소년문화회관'에서

그의 소설을 각색하여 연극을 올리기 위해 '경희'라는 작품을 각색해 보았다. 그러면서 깜짝 놀랐다. '그 시절에

그런 위대한 여성이 있었구나!'란 감탄과 함께 나혜석이란 인물에 너무도 문외한이라는 자괴감에 얼굴을 들 수

없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경희'라는 소설은 1918년 3월, 여자계(女子界)에 발표한 소설이다. 페미니즘 소설로는 최초의 현대소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유학생, 서양화가로서뿐 아니라 소설가, 시인이었으며 세계일주를 하고 서울전시회를

최초로 개최한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구한말, 그리고 일제라는 시대의 두꺼운 껍질 속에서

(3.1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5개월 옥고를 치름) 힘든 삶을 살고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만한 했던 선각자였다.

   "4남매 아이들아, 너희들이 외교관이 되어서 프랑스 파리에 오거든 에미 무덤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다오."란

유언을 남기고 이역만리에 화가로서 살다가 뼈를 묻을 각오를 한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시대의 인습에

가슴저려 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거라. 너의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드니라."란 절절한 유언도 남겼던 사람이다.

   나는 그저 그녀가 남긴 소설 '경희'와 희곡 '파리의 그 녀자'를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내가 그런 유언을 남길 입장이라면 피를 토했을 것이다.

   지금은 '경희'를 모노드라마로 각색을 고치는 중이다. 아픈 마음에 잠시 떠오른 소회를 적어보았다.